***풍경소리/如如한 날들의 閑談

두 번째 화살과 오취온

slowdream 2023. 3. 13. 22:22

두 번째 화살과 오취온

 

 

붓다께서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가르침대로라면 첫 번째 화살은 이미 맞은 것이라 어찌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두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다는 의미겠지요. 그렇다며 첫 번째 화살과 두 번째 화살의 비유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일반적인 해석은 첫 번째 화살은 육체적 고통, 두 번째 화살은 정신적 고통입니다. 육체적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가라앉고 마침내 사라질 것이므로, 그 고통을 정신적인 고통으로 확대재생산하지 말라는 그런 얘기일 겁니다.

 

하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좀더 숙고해본다면 또다른 결론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화살은 오온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화살은 오취온입니다. 중생이 겪는 윤회의 수레바퀴는 한 쌍으로 두 가지입니다. 오온과 오취온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취온의 윤회가 멈추고서야 비로소 오온의 윤회가 멈춥니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아야 첫 번째 화살이 드러나고, 마침내 첫 번째 화살이 뽑히게 됩니다. 중생은 이미 첫 번째와 두 번째 화살을 모두 맞은 상태입니다. 순간순간 새로운 업을 실행함으로써 또다시 새로운 두 번째 화살의 고통스런 과보를 겪습니다.

 

오온도 苦이며, 오취온도 苦입니다. 첫 번째 화살은 전생 업의 과보입니다. 두 번째 화살들은 금생 업의 과보입니다. 탐욕의 화살과 분노의 화살, 어리석음의 화살입니다. 이 즐거움이 나를 더욱더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탐욕, 이 괴로움이 나를 더욱더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는 분노, 그런 까닭에 즐거움과 괴로움에 더욱더 집착하게 되는 어리석음입니다. ‘자아’라는 색안경을 벗어야만 제법의 실상이 여실하게 드러납니다. 그럼으로써 고통스러운 윤회의 수레바퀴가 멈춥니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서, 색안경을 벗기 위해서는 삼매와 지혜가 요구됩니다. 겉옷을 벗어야 속옷을 벗을 수 있듯, 삼매로써 갈애를 그치게 하고 지혜로써 무명을 버리게 합니다. 바람이 그쳐 물결이 잔잔해지고 물위에 달 그림자가 온전히 드러나듯이, 마침내 마음이 탐욕과 자아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오취온은 일상적 자아입니다. 중생은 이 몸과 정신이 ‘나, 자아’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지혜가 무르익음에 따라 이 몸과 정신이 ‘나, 자아’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영원한 실체로서의 ‘나, 자아’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 ‘무상하고 무아’인 법들을 관장하고 주재하는 형이상학적인 그 무엇, 초월적 힘은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흠결없이 원만구족한 그 무엇을 ‘참나, 진아, 일심, 자성청정심, 한마음, 하나님’이라 명명해 보기도 합니다. 초월적 자아입니다. 그러나, ‘무아’는 일상적 자아뿐 아니라 초월적 자아 또한 존재할 수 없음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연기하는 법들의 현상뿐임을 가르쳐줍니다. “業報는 있되, 作者는 없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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