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와 똥막대기(도덕경 해설)

도덕경 38장. 예의란 어지러움의 우두머리

slowdream 2007. 8. 10. 19:06
 

<제 38장. 예의란 어지러움의 우두머리>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上德無爲而無以爲 下德爲之而有以爲 上仁爲之而無以爲 上義爲之而有以爲 上禮爲之而莫之應 則攘臂而扔之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前識者 道之華而愚之始 是以大丈夫處其厚 不居其薄 處其實 不居其華 故去彼取此


고상한 德은 德이 아니므로 德이 있다. 저속한 德은 德을 잃지 않음으로 德이 없다. 고상한 德은 함이 없으며 그렇게 해야 할 까닭이 없다. 저속한 德은 억지로 하며 그렇게 해야 할 까닭이 있다. 고상한 仁은 억지로 하나 그렇게 해야 할 까닭은 없다. 고상한 義는 억지로 하나 그렇게 해야 할 까닭이 있다. 고상한 禮는 억지로 하나 응하지 않으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끌어당기며 강요한다. 그러므로 道를 잃자 德이 나타나고, 德을 잃자 義가 나타나고, 義를 잃자 禮가 나타나는 것이다. 무릇 禮란 충의와 신의가 희박해진 것이며 어지러움의 우두머리이다. 앞섦을 안다는 것은 道의 화려한 꽃이며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그런 까닭에 대장부는 그 두터움에 머무르고 얇음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 열매에 머무르며 그 꽃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하여 유위를 버리고 무위를 취한다.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上德無爲而無以爲 下德爲之而有以爲(상덕부덕 시이유덕 하덕불실덕 시이무덕 상덕무위이무이위 하덕위지이유이위) 

 

  대체로 1장에서 37장까지를 道에 관한 내용으로 도경(道經), 38장부터 81장까지를 德에 관한 내용으로 덕경(德經)이라 분류한다. 허나 이는 지극히 편의적인 구분일 따름이며, 무시해도 괜찮다. 노자는 상덕과 하덕으로 德을 나누는데, 고상한 德은 천도(天道)를 따름이요, 저속한 德은 인도(人道)를 따르는 것으로 인의예지를 숭상하는 儒家를 빗대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상덕은 德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무위이며, 하덕은 의식적으로 德을 행하는 유위에 지나지 않다. 무엇을 잃어도 본래 내게 없었던 것이므로 애닳아 할 까닭이 없고, 무엇을 얻어도 본래 내게 있었던 것이니 감사해 할 까닭이 없다. 존재론적인 행동양식이며 무위이다. 무엇을 잃으면 속상하고 안타깝고, 무엇을 얻으면 더없이 흐뭇하며 기쁘다. 소유론적인 행동양식이며 유위이다. 


上仁爲之而無以爲 上義爲之而有以爲 上禮爲之而莫之應 則攘臂而扔之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夫禮者 忠信之薄(상인위지이무이위 상의위지이유이위 상례위지이막지능 즉양비이잉지 고실도이후덕 실덕이후인 실인이후의 실의이후예 부례자 충신지박) 

 

  仁義禮를 수식한 ‘고상한’이란 의미는 실상 ‘기껏 고상하다고 해봤자’라는 비웃음에 가깝다. 인의예 사이에 존재론적 등급을 매긴 듯싶지만, 이 모두는 道가 사라지자 그 자리를 차지한 아류(亞流)에 지나지 않다는 얘기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맹자의 4德인데, 여기에 전한(前漢)의 동중서(董仲舒)가 신(信)을 붙여서 오상(五常)으로 부풀렸다. 동중서는 진나라에 이어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 무제의 통치철학을 정립한 유학자로, 유학을 종교화한 유교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道德’하면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떠올린다. 오륜은 맹자가 주창한 다섯 도리로 부자유친(父子有親)ㆍ군신유의(君臣有義)ㆍ부부유별(夫婦有別)ㆍ장유유서(長幼有序)ㆍ붕우유신(朋友有信)인데, 이를 동중서는 통일국가의 질서와 정통성 확립을 위해 삼강으로 압축시켰다. 즉 군위신강(君爲臣綱)ㆍ부위자강(父爲子綱)ㆍ부위부강(夫爲婦綱)이 바로 그것이다. 綱이란 ‘그물의 벼리, 법’이란 뜻으로, 오륜을 엮는 도리인 親ㆍ義ㆍ別ㆍ序ㆍ信에 비해서 강압적이며 의식적이다.

 

  동중서는 제자백가 가운데 儒家만을 숭상하고 나머지는 폐지했으며, 전국시대의 추연과 진나라의 여불위가 체계화한 ‘천인감응설’과 ‘음양오행설’을 유학에 결합시켜 유학을 원래 모습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민간신앙적 성격으로 변질시켰다. 이것이 유교인 바, 우리가 알고 있는 유교는 실상 공자, 맹자의 가르침과는 적잖이 다른 것이다. 삼강이 그렇듯, ‘천인감응설’ 또한 국가권력을 합리화하는 이론적 뒷받침으로 하늘[天]을 인격화시키고, 그 하늘의 뜻은 일반 백성이 아니라 지배자[人]인 천자와 교감된다는 것에 지나지 않다. 뒤집어서 천자는 하늘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禮에 대한 비유가 익살맞다. 예를 권하는데 반응이 없으면 팔을 걷어붙이고 멱살을 잡은 채 억지로 허리를 굽히게 한다는 것이다. 공자의 예란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제도를 가리키는데, 주(周)의 봉건제도를 뜻하기도 하고 성현의 가르침을 뜻하기도 한다. 仁義는 그 제도의 내용으로, 인은 사랑이며 의는 마땅한 차별이다. 즉 인의와 예는 안팎의 관계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와 소인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이러한 형식적이고 작위적인 예가 노자의 눈에는 마치 어른이 아이 옷을 걸친 것마냥 참으로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而亂之首 前識者 道之華而愚之始 是以大丈夫處其厚 不居其薄 處其實 不居其華 故去彼取此(이란지수 전식자 도지화이우지시 시이대장부처기후 불거기박 처기실 불거기화 고거피취차) 

 

  이러한 인의예 탓에 세상살이가 어지럽게 되었다는 탄식이다. 19장의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에게 이로움이 백 배는 더할 것이다. 인을 끊고 의를 버리면 백성에게 효와 자가 다시금 찾아올 것이다. 교묘한 재주를 끊고 사리를 버리면 도둑이 사라질 것이다”, 36장의 “물고기가 못에서 나올 수 없듯, 나라에 이로운 도구를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와 같은 맥락이다. 前識者는 윗문장의 인의예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겠고,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 몇 걸음 늘 앞서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리는 지식인의 비유이기도 하겠다. 이러한 유위는 道를 그럴 듯하게 꾸며서 볼거리가 화려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음의 시작인 것이다. 두터움과 열매는 무위, 얄팍함과 꽃은 유위이겠다.

 

  여기서 대장부란 성인에 다름 아닐 텐데, 맹자에 따르면,“대장부는 천하의 대도를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같이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행하여, 부귀해도 음란하지 않으며 빈천해도 뜻이 변하지 않으며 압력과 무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번에는 佛家의 대장부를 만나보자. 당나라의 단하(丹霞) 스님이 어느 해 겨울 낙양의 혜림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신세를 지게 된 탓에 공양도 주지 않고 방에 불도 때어주지 않았다.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단하 스님은 법당에서 목불(木佛)을 끌어다 쪼개서 불을 피웠다.

  절의 주지 스님이 부리나케 달려와 야단을 치자, 단하 스님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부처님 사리를 얻어볼까 하고 다비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러자 주지 스님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나무 불상에서 무슨 사리가 나온다는게요?”

“사리도 나오지 않는 부처라면 하나 더 갖다 때워야겠소.”

  가히 대장부라 할 수 있지 않은가! 단하 스님은 출가하기 전, 유학(儒學)을 공부하던 선비였다. 어느 해 과거를 보러 가다가 주막에서 한 선승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끝에 그만 마조 선사를 찾아가 제자가 된다. 하루는 단하 스님이 마조 선사를 뵈러 갔는데, 스승에게 들러 절을 할 생각은 않고 곧바로 큰방으로 들어가서 나한상의 목을 타고 앉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모두들 경악하여 급히 마조 선사에게 아뢰었다. 마조 선사가 큰방으로 들어가 제자를 보고는 껄껄 웃었다.

“천연(天然)스럽구만.” 

  단하 스님은 즉시 나한상에서 내려와 스승에게 절을 올렸다. 이후로 스님은‘천연’이라는 법호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