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相行識 亦復如是
사리자야!
색이 공과 다르지 아니하고
또한 공이 색과 다르지 아니하고,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라.
수와 상과 행과 식이
또한 이와 같으니라.
.......................................................................................................
우리가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일으키면,
일으킬 그 당시에는 그것을 알아차리는 주체가 없다.
'반야심경 2. - 행심반야바라밀다시'에서 말했듯이
항상 행이 있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 행을 한 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행한 자가 자신이 행했음을 알았다는 것을 알아차리려면,
또 시간이 지나야 한다.
매 순간 일어남과 인식은 시차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일어날 때에,
즉, 생생하게 현실로 나타날 때에는(색)
그것을 분별하거나 인식하는 그 무엇이 없다는 것이다.(공)
색과 공이 둘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그래서,
행은 있되 행한 자가 없으니,
행은 있으니 색이요. 행 한자가 없으니 또 공 하다.
반야심경 3. -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에서 말했듯이,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공이다.
하지만, 매 순간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가고 나투고 있다.
그래서 색이다.
그래서 있되 잡을 수가 없어서,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고,
한 물건이라고 칭하려해도, 칭하는 순간 이미 사라지고 없고,
그래서 모두가 공 하냐하면, 너무나 생생하게 삼라만상이 펼쳐져 있고,
내 속의 감정과 생각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 늘 살아 움직이고 있으니 색이요.
그것이 잠시도 머무르지 않아 잡을 수가 없으니 공이다.
그것이 머문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분별하는 마음은 분별하는 잣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잣대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기억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즉, 사라지고 없는 것을 잣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엉터리 잣대 말이다.
그 잣대를 없애려면,
분별하는 마음이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분별이 사라지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가 있다.
그러면 세상과 자신의 움직임이 완전하지 않는 것이 없다.
분별하지 않는 그 마음이 삼라만상과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품어 안을 수 있다.
품어 안을 수 있다는 것은 텅 비어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티끌 만한 것이라도 들어있다면,
그 티끌이 마음을 온통 차지하고 앉아 있어서
단 하나의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처럼,
원래 진여의 마음은 모든 것을 분별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마치 허공이 세상만물을 다 품어 안 듯이...
그래서 분별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진여의 마음이요. 바로 공이다.
그러니 보라!
분별 없이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니,
너무나 완벽하게 모든 것이 저대로의 삶을
지금 이 순간에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바로 색이다.
그래서,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아서,
색이 바로 공이요,
공 또한 색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반야심경에서,
색불이공이라는 말 하나만 해도,
이미 색과 공이 같다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건만,
왜, 중언 부언을 하는 걸까?
그 이유가 바로,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다고만 하면,
중생의 마음에는 항상 뭔가 따지는 버릇이 있어서,
다르지 않지만, 그 크기가 달라서 다르지 않은 무엇을 있을 거라는 마음을 내기 때문에,
마치,
필요충분의 조건처럼,
필요는 한데 충분치 않거나,
충분한데 필요치 않는 부분이 있지나 않을까 하여서
또 다시 찾고 따지고 분별하는 마음을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색이 바로 공이요, 공이 바로 색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즉, 공이 바로 색 그 자체, 공 전부가 바로 색 전부이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찾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같은 것을 시각만 달리 했다 라고 이해하면 된다는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위치와 속도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위치를 파악하려면 속도를 알 수가 없고,
속도를 측정하려면 위치를 알 수가 없어서
위치와 속도가 다른 것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결국은 하나를 두고 보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 다시
색이 바로 공이요, 공이 바로 색이다라고
다시 두 번 이야기 한 것은,
또 마음이란 놈은
색이 바로 공이라고만 하면,
색은 허상이고
공만이 진짜인 줄 알고 공에 머무르려고 하고,
공이 바로 색이다. 라고 만 하면,
또한 공은 허상이고
색만이 진짜인 줄 알고 색에 머무르려고 한다.
그래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또 다시 두 번을 이야기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마음의 지독한 분별을 아시고,
그 분별하는 마음을 경계해서 중언 부언하시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것이다.
분별하지 마라고 하면,
마음은 또 하나의 상을 지어서,
자신도 모르게 분별한 것을 또 다시 분별했다고 쥐어뜯기 때문이다.
분별했으면,
그 역시 그 당시에 분별한 자가 없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앞의 1.2.3의 해설에서도,
비록 분별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그것을 분별하지 마라고 하는 것이다.
수없이 분별에 분별을 더하더라도,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냥 그것대로 맡기고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이 것이 바로 분별에도 분별 아님에도 매이지 않는 것이 어서,
공에도, 공 아님에도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수상행식 또한 이와 다르지 않느니라' 라고 하신 것은,
수,상,행,식 또한
크게 보면,
색이라는 것이다.
색이라는 것은 바깥의 물질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작용 역시 마음에서 볼 때에 대상에 해당되기 때문에,
수상행식 역시 또한 색이다.
즉,
인식작용은 항상 그것이 일어난 후에 일어나므로,
다시 말해서 우리의 마음은 동시에 두가지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먼저 한 생각을 일으키고 난뒤에야 그 생각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을 일으킨다.
그래서 항상 선후가 있기 때문에 후가 선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똑 같은 마음이 저지르면서도,
스스로가 스스로 저지른 먼저의 것을 대상으로 삼아서 판단한다.
자성의 세계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없는데,
마음이란 놈은 기억이라는 것이 있어서,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항상 제 놈이 스스로 하는 짓을,
시차로 나누어 보니,
뒤의 것이 앞의 것을(다 한 놈이면서도) 판단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판단대상이 된다는 것은,
판단하는 놈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바깥 사물과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수상행식 역시 뒤에 판단하는 놈의 입장에서 보면,
색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상행식 역시 분별없이 바라보면,
매 순간 그것밖에 없이,
물처럼 흘러가므로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공).
하지만, 우리의 정신작용은 늘 끊임없이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색)
그러니,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듯이,
오온이 공하고, 공이 바로 또 오온인 것이다.
그래서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바로 색이 공이요, 공이 색인 것이다.
내가 계속 분별을 하지 마라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분별한 그 모습조차도 분별하지 마라고 말이다.
이 부분을 짧게 해석하는 이유는,
이미 앞의 부분에서 수없이 이야기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반야심경은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만 이해하면,
반야심경을 다 안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니 모든 경 또한 그러하다.
하나를 통하면 모든 것이 다 통한다.
그 하나가 무엇인가?
바로 자성을 바로 아는 것이다.
그 하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수많은 법을 설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 경이 바로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자성을 알기 위해서는,
자성이 바로 자신임을 알기 위해서는,
수 많은 경들이 필요할 지는 모르지만,
알고 나면,
모든 경이 바로 하나로 통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떤 조사가(아마 조주스님인듯...)
누가 묻기를
"도가 무엇입니까?"
"문 앞의 길은 장안으로 가는 길이다."
라고 했다던가?
그래서 앞으로의 것도 짧게 해설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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