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9 무무명 역무무명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이전도몽상 구경열반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碍 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미혹된 어리석음도 없고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것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으며 끝내 늙고 죽음을 벗어나는 것도 없나니 괴로움도 없고 괴로움의 원인도 없고 괴로움을 없애는 일도 없으며 팔정도의 길도 없느니라. 지혜가 따로 있을 수 없으며 아무런 얻음과 잃을 것이 없으므로 모든 보살은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닦아가나니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에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 잘못된 망상을 떠나 마침내 열반에 이르느니라."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실체를 이 경을 통해서 알았다.
그것을 다시 간략하게 요약하면,
자성은 텅 비어 있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나,
무명의 바람이 불어서 자성의 바다에 파도가 일어서 삼라만상이 일어났다.
그 삼라만상이 지금의 나라고 하는 이 생각과 몸과 그리고 바깥의 모든 만물인 것이다.
그러나,
그 삼라만상은(색:色) 잠시도 머물지 않아서 잡으려하면 흘러가버리고 잡으려하면 흘러가버리니,
한 물건이라고 할 것도 없고, 바늘하나 꽂을 틈도 없고, 이것이다라고 할 것도 없고,
또 매 순간 그것밖에 없어서 비교할 대상조차 없으니 분별할 수 없어서
공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삼라만상이 그냥 저 홀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성(불성, 진아 등등..)의 성품과 세계를 벗어날 수가 없어서 자성의 바탕위에 일어났다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성은,
자성위에 나투어진 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물들거나 하지도 않고,
그 나투어진 것들의 모습이나 내용이나 속성들이 어떤 것이든지,
분별하지 않고 일어나고 사라질 수 있도록 받아들이고 있어서 공하다고 하였다.
또한 삼라만상이 아무리 아름답고 신비하고 위대하고 크고 거룩해 보인다고 해도,
자성의 성품이 없으면 생겨날 수도 없고, 자성의 바탕이 없으면 생멸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자성이 모든 것의 근본이다.
자성은 형체가 없고 움직이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공이다.
(공즉시색이라고 할 때의 공이 바로 자성을 말한다.)
이 것을 개인의 마음과 생각에 비유하면
마음은 텅 비어 있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나,
무명의 바람이 불어서 마음의 바다에 파도가 일어서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그 생각이 바로 감정, 기분, 분별하는 마음 등이다. 그리고 미세망상(제8식인 아뢰야식)까지...
그러나,
그 생각은(색:色) 잠시도 머물지 않아서 잡으려하면 흘러가버리고 잡으려하면 흘러가버리니,
한 물건이라고 할 것도 없고, 바늘하나 꽂을 틈도 없고, 이것이다라고 할 것도 없고,
또 매 순간 그것밖에 없어서 비교할 대상조차 없으니 분별할 수 없어서
공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생각이 그냥 저 홀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마음(불성, 진아 등등..)의 성품과 세계를 벗어날 수가 없어서 마음의 바탕위에 일어났다 사라진다.
그러나, 그 마음은 마음위에 나투어진 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물들거나 하지도 않고,
그 나투어진 것들의 모습이나 내용이나 속성들이 어떤 것이든지,
분별하지 않고 일어나고 사라질 수 있도록 받아들이고 있어서 공하다고 하였다.
또한 생각이 아무리 아름답고 착하고 위대하고 크고 거룩해 보인다고 해도,
마음의 성품이 없으면 생겨날 수도 없고, 마음의 바탕이 없으면 생멸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다.
마음은 형체가 없고 움직이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공이다.
(공즉시색이라고 할 때의 공이 바로 마음을 말한다.)
이것은,
자성이 개개의 사람에 들어와서 마음이 된 것을 말한다.
그래서 마음하나 밝혀 알면 모든 것을 알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지금의 대목의 설명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모든 생각의 근본이며
어떤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붙들고 좋다하여 칭찬하고,
나쁘다 하여서 탓하지 않는다.
번뇌하고 고통받고 내어치고 따라가는 것은
다만 분별하는 생각끼리 서로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미혹된 어리석음도 없고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것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으며 끝내 늙고 죽음을 벗어나는 것도 없나니”이다.
우리의 본 마음은 무명(無明: 어리석음)이 없다.
무명이 애초에 없으니 무명이 다함도 없다.
또, 이 마음은 한번도 움직인 적이 없으니,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애초에 없으니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다.
그리고 우리의 본 마음은
나지도 멸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고,
남음도 모자람도 없이 청정한 그대로여서
“괴로움도 없고 괴로움의 원인도 없고 괴로움을 없애는 일도 없으니
괴로움을 멸하기 위한 팔정도의 길도 없다.”
(무고집멸도 : 無苦集滅道 - 사성제가 없다.)
그 뒤의 부분은 해설할 것도 없이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된다.
“지혜가 따로이 있을 수 없으며 아무런 얻음과 잃을 것이 없다.(무지역무득 :無智亦無得)
얻을 것과 잃을 것이 없으므로(이무소득고 : 以無所得故)
모든 보살은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나니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이 반야바라밀다가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본 마음을 말한다.
나지도 멸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고,
남음도 모자람도 없이 청정한 그대로의 마음을 말이다.
“마음에 걸림이 없고(심무가애 : 心無罣碍)
마음에 걸림이 없으므로(무가애고 : 無罣碍故)
두려움이 없어(무유공포 : 無有恐怖)
잘못된 망상을 떠나(원이전도몽상 : 遠離顚倒夢想)
마침내 열반에 이르느니라.(구경열반 : 究竟涅槃)”
이 본마음이 청정하니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에 걸림이 없으니,
무엇을 얻지 못할까?
무엇을 잃을까?
무엇에 물들까?
하는 무명에 의한 두려움이 없다.
또 두려움의 가장 큰 근원이 바로 생사인데,
이 본마음은 애초에 움직인 적이 없어서 태어난 적도 없고 태어난 적이 없으니 죽음도 없다.
그러니, 이 본마음의 지혜를 얻은 자가 무슨 두려움이 있을 것인가?
무명에 의한 두려움이 없으니 전도망상이 일어날 까닭이 없다.
그래서, 구경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구경열반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
자성(마음)이 공한 이치를 바로 알면 그만인 것이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무치게 안다는 것이다.
비록, 마음이 공하고 자성이 공한 이치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일어나는 생각의 분별을 여의지 못한다면,
여전히 그에게는 무명의 길로만 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무치게 아는 길은
오직 분별하는 생각을 있다고 여겨서
따라가거나 내치려 하지 말고,
그냥 저대로의 생명이 다하도록 내버려두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마음의 본 모습이 바로,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분별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저 대로 살다가도록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생각을 내버려두는 것은,
자성의 공한 이치를 아는 방법이기도 하면서,
자성의 공한 이치를 깨닫고 난 뒤에 보림을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