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불교/서장(書狀)

서현모에게 답하는 편지

slowdream 2007. 11. 3. 09:51
 

서현모에게 답하는 편지


그대가 자주 소리[편지]를 부쳤기에 내가 생각해 보니, 단지 물소[8식]를 조복하고자 하며, 단지 원숭이[전6식]를 죽이려 할 뿐이노라. 이 일은 총림에 오래도록 지내면서 선지식을 흡족히 참례하는 데 있지 않음이요, 다만 한 말씀 한 글귀 아래에 곧바로 꺾어 알아차려서 빙 둘러 돌지 않음을 귀하게 여김이니, 사실에 의거하여 논하건대 그 사이에는 터럭끝만큼도 용납지 못하느니라. 마지못해서 이 “곧바로 꺾는다”라고 하지만 이미 굽어버린 것이며, 이 “알아차린다”고 하는 말도 이미 빗나가 버린 것이거늘, 하물며 다시 가지를 이끌고 넝쿨을 끌어당겨서 경을 들고 교를 들며 이치를 말하고 일을 말하여 구경(究竟)하고자 하겠는가?


고덕이 이르시되 “다만 가는 털이라도 있으면 곧 번뇌니라”하니, 물소를 조복하지 못하고 원숭이를 아직 못 죽였을진댄 비록 수없이 많은 도리를 말하더라도, 아울러 나에게는 조금도 간섭되지 않느니라.


그러나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없음도 역시 바깥쪽 일이 아니니라. 보지 못했는가? 강서노장[마조도일]이 말씀하시기를 “말할 수 있더라도 또한 너의 마음이요, 말할 수 없더라도 역시 너의 마음이다”고 하시니, 결정코 곧바로 꺾어 짊어지고자 할진댄 부처와 조사 보기를 마치 살아 있는 원수와 같이 하여야 바야흐로 조금 상응함이 있으리라. 이와같이 공부를 지어서 날이 오래되고 달이 깊어지면 마음을 일으켜 깨달음을 구하지 아니하여도 물소가 스스로 조복되고 원숭이가 스스로 죽게 되리니, 기억해 가지고 기억해 가질지어다. 다만 평소에 마음이 모여 머물래야 머물지 못하는 곳과 취하려고 하나 취할 수 없는 곳과 버리려고 하나 버릴 수 없는 곳을 향하여 다만 이 화두를 간하되 <어떤 스님이 운문에게 묻되 “무엇이 부처입니까?”하니, 운문이 이르시되 “마른 똥막대기니라”>하라. 간할 때에 평소의 총명 영리함을 가져서 헤아려 생각으로 재지 말지니, 마음을 사량하면 십만 팔천 리가 먼 것이 아니니라. 아니, 사량하지 않고 계교하지 않고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음이 곧 옳다는 것이냐? 돌(咄)! 다시 이 무엇인고? 잠시 이 일을 두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