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 (6) 화두 참구하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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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선지식에게서 화두를 받았다면 화두를 가지고 참선을 해야 한다.
화두참선을 다른 말로 참구(參究)한다, 든다, 짓는다, 공부한다 등으로 표현한다.
이들 말의 공통점은 화두에 간절한 의심을 일으킨다는데 있다. 화두참구는 염불하듯이 외우는 것도 아니고, 화두를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흔히 화두를 생각한다고 알기 쉬우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화두참구는 의심을 일으켜야 한다. 의심을 일으키되 너무 강하게도 약하지도 않으며 거칠게 들지도 말고 가볍게 들지도 않으며 급히 일으켜서도 안되고 느리게 일으켜서도 안된다.
봉화 축서사 무여스님은
“화두를 급히 강하게 들고 거칠게 의심을 일으키면 육단심(肉團心)이 동하여 혈기가 고르지 못하고 갖가지 병을 유발시키기 쉽다.
그러나 의심을 약하게 가볍게 일으키고 느리게 한즉 망상이 들어오기 쉽고, 해이하고 산만해지기 쉽다. 화두참구는 적당히 알맞게 의심을 일으켜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이를 ‘알음알이(知解)’라고 하는데 이는 결코 선(禪)이 아니다. 이성적인 분별심으로 화두를 풀어가는 것은 바른 공부가 아니다. 화두는 오로지 분별의 양변을 떠나서 타파할 필요가 있다.
간화선을 정립한 대혜스님은 〈서장(書狀)〉에서
“화두를 들 때 평소에 영리하고 총명한 마음으로 헤아려 분별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으로 헤아려 분별하면 십만 팔천리도 결코 먼 곳이 아니다” 고 밝히고 있다. 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憤心), 대의심(大疑心)을 갖추어야 한다.
고봉 원묘(高峰原妙)스님은 〈선요(禪要)〉에서 이를 화두에 들어가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라고 밝히고 있다.
큰 믿음이란 내 자신은 물론 일체 중생이 본래 성불해 있다는 믿음이다. 나와 부처님은 어떤 차이도 없으며 비록 모습에 차별이 있고 나타난 능력에 차이가 있으며 수명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본성은 그러한 차이에 상관없이 같다는 것이다.
화두에 대한 의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몸이 하자는 대로 하는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크게 깨닫겠다는 마음이 치밀어 올라와야 한다. 억겁의 무명을 뚫고 온갖 분별의 함정에서 단번에 벗어나 대자유의 평원으로 뛰어나가는 것이다.
화두란 간절히 알고자 하는 의심이 생명이다.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어째서?’ 등의 질문이 의심을 간절히 불러일으키게 된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유가 아니라 앞과 뒤가 꽉 막힌 모든 언어 사유가 끊어진 경지에서 간절히 지속적으로 알고자 의심해 들어가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은 화두를 참구하는 것과 관(觀)한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화두에 의정(疑情)을 일으킨다는 뜻이고, 관(觀)한다는 것은 화두에 정신을 집중한다는 의미이다.
화두는 참구해야지 그냥 집중을 해서는 진정한 의심이 일어나기 어렵다.
화두는 오직 말 길도 끊어지고 마음 길도 끊어진 상태에서 간절히 참구해서 화두와 내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
또한 참구란 의심에 들어 의정이 된 상태에서 그 의정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이고, 관(觀)을 한다는 것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계속 집중하여 관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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