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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자 오강남의 인류의 스승]정호와 정이

slowdream 2009. 2. 10. 03:32

[종교학자 오강남의 인류의 스승]정호와 정이
유학의 인간 도리를 깨우침의 경지로 승화
기사등록일 [2009년 02월 09일 14:47 월요일]
 
 

정이(왼쪽)와 정호(오른쪽)의 초상화.

 

도교와 불교 수용, 신유학의 토대 마련
선불교의 영향 받아 수행 측면 크게 부각
정호·정이는 형제…정호 理 정이 心 주장
주자학·양명학 양분…종교적 색채 짙어


유교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공자, 맹자, 순자 등의 유교를 ‘원시 유교’ 혹은 ‘선진(先秦) 유교’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초기 유교는 한(漢)대에서 당(唐)대에 이르기까지 불교와 도교가 성행하면서 그 영향력이 크게 축소되었다. 그러다가 송(宋, 960-1276)대에 들어오면서 다시 흥왕하기 시작하는데, 이때에 새로 등장하는 유교를 근래 학자들은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이라 부른다.

신유학은 단순히 고전 유교의 부흥만이 아니라 그동안 성행했던 불교와 도가 사상을 포함하여 그 당시까지 중국에 내려오던 모든 사상을 아우르며 나름대로 새로운 사상으로 체계화한 일종의 거대한 사상적 종합이라 할 수 있다.

 

신유학은 성인이 되는 학문

 

신유학을 ‘성학(聖學)’이라고 부르는데, 성인들의 가르침이라는 뜻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성인이 되게 하는 학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성인은 윤리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를 통해 ‘특수 인식능력의 활성화’를 이룬 사람이다. 성학이란 이런 특수한 경험을 통해 ‘성인의 경지(sagehood)’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 내지 종교적 자세라 볼 수 있다.

 

신유학에서는 성인이 되는 길을 가르쳐 주는 문헌으로 『대학(大學)』을 중요시했는데, 여기에는 성인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 여덟 가지 단계를 밝혀주고 있다. 그 여덟 가지 단계란 1. 격물(格物, 사물을 궁구함), 2. 치지(致知, 앎을 극대화함), 3. 성의(誠意, 뜻을 성실히 함), 4. 정심(正心, 마음을 바르게 함), 5. 수신(修身, 인격을 도야함), 6. 제가(齊家, 집안을 꾸림), 7. 치국(治國, 사회를 지도함), 8. 평천하(平天下, 세상에 평화를 가져옴)이다.

신유학은 크게 두 파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를 이학(理學)이라하고, 다른 하나를 심학(心學)이라 한다. 이 두 파는 성인이 되기 위해 밟아야 하는 처음 단계인 ‘격물’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랐다.

 

사물을 궁구한다는 것을 두고 이학 파는 여러 사물 속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이(理)를 찾아내는 것이라 생각했고, 심학 파는 ‘내 마음이 곧 이(心卽理)’이므로 내 마음을 살피는 것이 곧 사물을 궁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학파는 사물이든 마음이든 그것을 오랜 기간 깊이 궁구하면 결국에는 어느 순간 ‘밝음[明]’이나 ‘깨침’에 이르게 되고 이렇게 된 경지에 이른 사람이 궁극적으로는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이런 배움이 농사나 공업 같은 기술적인 배움인 소학(小學)과 달리 바로 ‘대학(大學)’ 곧 ‘큰 배움(Great Learning)’이라 여겼다. 신유학이 이처럼 일종의 깨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중국 철학사의 대가 풍유란은 “신유학은 사실 선불교의 연장이라”할 수 있다고 하였다.(SHCP 280).

 

이학을 정주학(程朱學)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정이(程顥, 1033-1108)와 주희(朱熹, 1130-1200)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심학을 육왕학(陸王學)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정이의 형 정호(程, 1032-1085)가 시작하고, 후에 육상산(陸九淵, 象山, 1139-1193)과 왕양명(王守仁, 陽明, 1473-1529)의 가르침이 그 학파의 주종을 이룬다는 뜻이다. 육왕학은 보통 양명학(陽明學)이라 하기도 한다. 한국 조선조에는 주자학이 대세를 이룬 반면 양명학은 거의 빛을 보지 못했다.

 

주돈이-소옹에게서 수학

 

오늘은 이들 중에서 정이와 정호 두 형제의 사상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물론 신유학이 생기기까지 그 전에 있었던 학자들, 특히 태극도(太極圖)를 완성한 주돈이(周敦, 1017-1073), 모든 것을 수리(數理)적으로 설명하려 한 소옹(邵雍, 1011-1077), 기(氣)에 대한 이론을 구축한 장재(張載, 1020-1077) 등의 공헌이 지대하지만, 신유학이 하나의 체계적인 학파로 발전한 데에는 정이, 정호 두 형제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할 수 있다.

 

이 두 형제의 공로로 유학은 지금까지의 우주론이나 본체론적 논의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 자신의 문제, 도덕의 완성과 목표 등에 관한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쏟게 되었다.
이 두 형제는 지금의 하남(河南)성에서 출생했다. 이들의 아버지는 주돈이의 사람됨을 보고 아들들의 교육을 부탁했다. 형제는 어려서 주돈이로부터 배우고 나중에는 5촌 아저씨 되는 장재와 토론도 하고, 또 집에서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소옹과도 학문적 교류를 자주했다. 장재에 의하면 이 두 형제는 14, 15세에 성인의 학에 뜻을 두었다고 한다. 과거나 출세 같은 데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인격 도야와 수양에 마음을 썼다는 뜻이다.

 

두 형제는 서로 같은 스승에서 배우고 같은 사람들과 사귀었기에 자연히 많은 면에서 생각이 서로 비슷하였다. 그러기에 전통적으로는 이 두 형제를 묶어 ‘정자(程子)’라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둘의 사상이 모든 면에서 똑 같은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형은 심학의 선구자가 되었고, 동생 정이는 이학의 선구자가 되었다는 것이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형 정호는 장재가 쓴 『서명(西銘)』이라는 책을 좋아했다. 그 책의 주제가 ‘만물은 하나’라는 것인데, 사실 이것은 정호의 주관심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정호에 의하면 인간은 본래 우주 만물과 일체를 이루고 있었는데,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이런 상태를 잃어버리고 분리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시 수양을 통해 나와 만물이 하나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했다. 맹자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불인(不忍)’의 마음이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이야기했는데, 정호는 그런 것도 결국 나와 만물이 하나라는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 보았다. 그는 만물과 하나됨이 바로 인(仁)의 기본 성격이라 규정했다.

 

조선은 주자학이 대세 이뤄

 

정호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배우려는 사람은 먼저 인(仁)에 대해 인식할 필요가 있다(學者須先識仁). 인의 사람은 만물과 혼연동체(渾然同體)이다.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이 결국 모두 인이다. 이 진리를 깨닫고 이를 성(誠)과 경(敬)을 다해 실천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전부”라 했다. 이렇게 만물과 하나라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무한한 기쁨의 원천이라고도 했다. 가히 화엄의 상즉·상입을 연상케 하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나중 육상산과 왕양명에 의해 더욱 자세히 논의된 것이다.

 

동생 정이는 이(理)라는 사상을 본격적으로 다룬 사상가라 칭해질 수 있다. 정이에 앞서 장재는 사물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이 기(氣)가 뭉치느냐 흩어지느냐, 곧 기의 취산(聚散)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기가 뭉치면 사물이 생기고 기가 흩어지면 사물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이 이론으로는 왜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사물이 생겨나는가 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다 같이 기가 뭉치는데 왜 꽃이 생기고 잎이 생기는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정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역에 나오는 ‘도’ 사상에 주목했다. 도가에서 말하는 도는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궁극 실재 같은 것이지만, 주역에서 말하는 도는 여러 가지 각이한 종류의 사물을 하나하나 관장하는 개별적 원리 같은 것이었다. 정이는 이런 주역의 도 개념에서 이(理)라는 개념을 도출하여 발전시켰다.

이제 장재의 이론대로 기가 응축하여 사물이 생겨나는데, 그것이 각각 다른 사물로 나타나는 것은 그 속에 있는 각각 다른 이(理)가 작용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꽃과 잎이 둘 다 기가 뭉쳐서 생긴 결과이지만 꽃이 꽃이 되고 잎이 잎이 된 것은 꽃에는 꽃의 이가, 잎에는 잎의 이가 각각 다르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는 재료와 같고 이는 그 재료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를 결정해주는 원리 같은 것인 셈이다.

정이는 또 모양 위의 것, 형이상(形而上)과 모양 안의 것, 형이하(形而下)를 구별하였다. 이런 용어는 주역에 나오는 것으로서, 형이상은 추상적인 것, 형이하는 구체적인 것을 의미한다. 정이는 형이상에 속하는 것으로 이(理)와 도(道)를 들고, 형이하에 속하는 것들은 구체적인 사물들이라고 보았다.

 

정이에 의하면 이(理)는 영원한 것으로 가감할 수도 없어질 수도 없다. 모든 사물에 있는 각각의 이는 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그것을 인식하든 못하든 모든 사물에는 이가 스며들어가 있다. 정이는 특히 ‘성즉리(性卽理)’라고 하여 인성이 곧 이라고 하였다. 인성인 이는 요순으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같다고 하였다. “성은 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선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 것은 재(才, 잔재주) 때문이다. 성은 리이고 이것은 요 임금 순 임금으로부터 어리석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일하다.”고 하였다. 또 “성은 하늘에서 온 것이요 재는 기(氣)에서 오는 것이다. 기가 맑으면 재도 맑아지고 기가 탁하면 재도 탁해지기 때문에” 선악의 구별이 생긴다고 했다. 따라서 기를 맑게 하려는 노력이나 수양 여하에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구분된다는 뜻이다.

 

수양법으로 誠과 敬 강조

 

정이는 수양 방법으로 무엇보다 경(敬)을 강조했다. ‘경(敬)’을 우리말로 ‘공경 경’으로 알고 있지만 더욱 중요한 의미는 ‘주의를 집중함(attentiveness)’이다. 정성을 다해 최선껏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지금껏 초기 신유학에서 사용하던 정(靜, 고요함) 이라는 말 대신에 이 말을 쓰기 시작했는데, 정이 이후 가장 중요한 신유학 특유의 용어가 되었다.


이와 함께 ‘궁리’도 권했다. 사물의 이(理)를 궁구하라는 것이다. 마음을 모으고 계속해서 이(理)를 구하다 보면 언젠가는 활연(豁然) 대오(大悟)하는 순간이 온다고 했다. 이런 면에서 신유학도 깨침을 목표로하는 종교적 색채가 짙은 사상체계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985호 [2009년 02월 09일 1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