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착한 글들

[여적]‘나’라는 우주

slowdream 2009. 4. 28. 19:00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영겁의 시간 속에서 인생은 또 얼마나 찰나인가. 그러나 일월성신의 장엄한 운행도 ‘나’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나’가 있어야 우주도 있다. 60억 인구를 태운 지구는 나를 위해 돌고, 하늘의 태양은 나를 위해 뜬다. 인간은 우주 속의 티끌에 불과하지만, 그 티끌은 곧 우주의 중심이다. 작가 정채봉의 ‘망원경과 현미경’이란 글을 풀어서 소개한다.

“우주에는 1000억개가량의 은하가 있고, 그 각각의 은하에는 또 1000억개 정도의 별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다 같은 양의 혹성도 있다. 그러니 우주의 바다에 떠 있는 별의 총수는 자그마치 100억의 1조배나 된다. 이 지구조차 우주에서는 한 점의 티끌에 불과하다. 그런데 ‘나’는 이 지구에서도 수십억명 중의 하나일 뿐이니 얼마나 작은 티끌 중의 티끌인가.” 망원경으로 우주에서 ‘나’를 바라보면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티끌보다 작은 존재인데 뭐가 좀 있다고 교만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는 현미경으로 나를 들여다보자. “나의 몸은 무려 33조라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많은 세포들로 이뤄져 있다. 이 무수한 세포가 우주의 별처럼 조화롭게 운행하며 생명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정밀한 조직은 ‘나’의 머리 속에 있는 대뇌의 표면이다. 여기에 있는 140억개의 신경세포가 생각하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그러니 뭐가 좀 없다고 풀죽을 필요는 없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내 몸은 엄청난 은하의 공동체이다.

은하수는 밤하늘에만 흐르는 것이 아니다. 내 몸에도 은하수가 흐른다. 수많은 세포가 별처럼 명멸하며 은하를 이루니, 내 몸은 곧 작은 우주다. 내가 움직인다는 것은 바로 우주가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잠들면 별들도 잠들고, 내가 눈을 뜨면 태양도 깨어난다.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그 자체로 기적이자, 우주의 경이이다.

동반자살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요즘이다. TV를 켜면 하루가 멀다하고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생은 그렇게 하찮은 것이 아니다. 삶이 버거우면 망원경으로 바라보자. 한날의 괴로움은 티끌에 불과하다. 삶이 초라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자. 내 속엔 우주의 장엄이 담겨 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보이지는 않아도, 희망이라는 별은 대낮에도 빛나고 있다.

출처 경향신문 <김태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