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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요구하는 불교학 / 홍사성

slowdream 2009. 5. 16. 14:38

불교가 요구하는 불교학

 

 


불교의 목적은 바른 법을 널리 펴서 중생을 제도하는데 있다. 불교학도 예외가 아니다. 불교학이 불교의 교리와 사상, 역사와 문화, 의식과 제도를 연구하는 이유는 깨달음과 구제라고 하는 불교본래의 목적에 봉사하기 위해서다. 불교학은 학문이라는 방법을 통해 불교의 종교적 목적에 기여하는 것에서 그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신학이 기독교의 종교적 목적에 봉사하기 위한 것과 마찬가지다.

순수한 학문의 입장에 서려는 학자들은 이에 대해 지나친 '호교적 태도'라면서 동의를 유보하려고 한다. 종교적 목적이 달라도 불교를 연구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지나친 호교적 태도는 불교학의 객관성을 함몰시킬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주장도 일리가 있다. 순수한 학문의 입장에서 검증된 진리야말로 호교론적 주장보다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생각해볼 일은 불교는 기본적으로 불교교리가 '완전한 진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불교학의 제일과제가 어째서 불교의 가르침이 가장 훌륭한 진리인가, 그리고 어떤 것이 불교의 가르침에 위배되는가를 판단하는데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대의 불교학은 진리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나 판단보다는 교리의 발달과정과 배경, 이에 따른 종교적 현상의 변화를 분석하고 설명하는데만 골몰하고 있다.

이러한 탐구와 설명이 불필요하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배경과 현상에 대한 철저한 탐구는 본질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우리의 불교학이 가장 중요한 교리적 문제에 대한 시비정오를 분별하고 판단하는 일을 소홀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 문제에 관한한 현대의 불교학은 과거보다도 못하다는 느낌이다. 교리문제에 대한 가치판단적 검증과 논쟁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 증거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불교는 기도를 하면 영험이 있다고 가르치는 종교인가 아닌가.신장이나 산신 칠성에게 귀의하고 믿어냐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영가천도와 자업자득은 모순되는가 일치되는가. 극락과 왕생은 실재적인 것인가 교리적 상징인가. 관세음이나 지장보살의 존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계율은 절대적 기준인가 가변적 방편인가. 현대의 불교학은 이 문제들에 대해 교리에 입각한 시비를 가려 정오를 판단하는 일을 주저하고 있다. 겨우 하는 설명이란 것이 '종교는 역사적 산물이며 불교는 도그마가 없는 포용적 종교'라는 변명이다.

그러나 경전은 부처님이 그 종교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외도와의 논쟁을 통해 진리와 비진리를 결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불교의 역사는 교리사상에 관한 선명한 결택이 사라질 때 타락과 왜곡의 길을 걷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불교학이 가장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는 어떤 것이 참다운 불교의 진리이고 어떤 것이 비불교적 작태인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일이어야 한다. 이 점을 외면한다면 불교학은 이미 목적을 상실한 학문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불교가 현실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교리나 역사, 문화나 제도에 대한 객관적 사실판단을 바탕으로, 그러한 종교현상에 대한 정오의 가치판단을 해주는 일이다. 이 판단이 전제돼야 바른 종교행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불교학은 모든 연구대상에 대한 사실분석의 수준을 넘어서 가치판단 쪽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불교학에 거는 기대이고 요구이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