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위기의 본질
3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불교의 모습은 현재와 많이 달랐다. 가난하기는 했어도 물질주의에 빠져 비법(非法)을 눈감는 일은 없었다. 밥을 굶더라도 부처님 법이 아니면 말하지 않고 핍박을 받더라도 사법(邪法)을 용납하지 않았다. 변칙적 방편보다는 원칙에 충실하려는 사람이라야 불자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돌아보자.
30년 전만 해도 신도가 부모의 49재를 올리기 위해 절에 와서 상담을 하면 스님은 이렇게 권했다. "기왕에 부모님을 위해 지내는 재라면 큰스님을 모셔 영가법문을 듣도록 합시다. 큰스님이 오시면 많은 스님들이 함께 오시고 불자들도 많이 모이게 됩니다. 그때 대중공양을 올리고 법문을 들으면 그 공덕이 어찌 적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재를 올리려고 스님과 상담을 하는 신도는 재비(齋費)를 얼마를 내놓아야 '스님들이 바라춤을 추어주느냐'고 묻는다. 큰스님을 모셔서 법문 듣자는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한다. 법문을 듣기보다는 바라춤을 추는 것이 종교행위가 돼버린 풍토, 이것이 요즘 한국불교의 현실이다.
30년 전에는 또 이랬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잘 아는 큰스님이 사찰에 있는 산신각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불교와 아무 관련이 없는 전각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일시적으로 찬반논쟁이 일어났지만 누구도 공개적으로 큰스님의 의견에 반대를 표시하지는 못했다. 큰스님의 권위도 권위지만 그 무렵만 해도 스님들은 산신각에 올라가 절을 하거나 공양을 올리는 일을 정당한 법사(法事)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산신기도를 한다는 소문이 나기라도 한다면 그 스님은 사도(邪道)를 행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전라도의 어떤 큰절에서는 주지스님이 산신기도를 허락하자 대중 가운데 한 스님이 이의를 제기했다. 대중공사 시간에 도끼를 꺼내놓고 산신기도를 한 것이 정법이라고 믿는다면 도끼로 팔을 자르자고 엽기적인 제안을 한 것이다. 결국 그 절 주지 스님은 대중에게 참회를 해야 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어떤 스님은 매년 정기적으로 산신기도를 한다는 소문이다. 그 스님은 유명한 본사의 주지를 하기도 했다. 일부이긴 하지만 스님이 이런 지경이고 보니 신도들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사찰복원불사를 할 때면 산신각부터 먼저 짓고 화려한 단청을 한 뒤 다른 전각을 짓는 일마저 종종 목도되고 있는 것이 요즘의 풍속이다.
30년 전에는 또 이랬다. 만약 어느 스님이 관상을 보아주거나 부적을 그려서 판다는 소문이 나면 그는 절에서 쫓겨나야 했다. 만약 조계사와 같은 절에서 입춘부적이라도 팔면 이는 분명히 종단적인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경상도 어떤 절 어떤 스님은 예언을 잘해서 유명정치인들이 찾아온다고 버젓이 신문에 나고 있다. 입춘부적을 파는 절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렇게 하는 사찰이나 스님들의 변명을 들어보면 모두 '포교의 방편'이라고 말한다. 참 이상한 포교방편도 다 있는 것 같다.
30년 전에는 또 이랬다. 옛날 큰스님들은 신도들에게도 기도보다는 참선을 권했다. 시내 포교당에는 재가자를 위한 선방이 운영됐다. 요즘 유행하는 시민선방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다. 전국의 유명한 포교당 치고 재가자 선방이 운영되지 않으면 무엇인가 포교가 잘 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참선이나 간경 같은 수행을 강조하는 절은 극히 희소하다. 대부분은 무슨무슨 기도와 영가천도만 강조한다. 수행은 없고 기복만 넘치고 있는 것이 요즘 우리 불교계다.
물론 30년 전에 비해 좋은 쪽으로 발전한 것도 참 많다. 정기법회 정착, 교양대학 활성화, 찬불가 제작, 사회봉사 활동 강화 등은 30년 전에 비해 확실히 자랑할만한 변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교리적 정체성(正體性)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발전이 아니라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그 정도가 고등종교인지 무속신앙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라면 이는 '불교의 위기'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해 '안 된다'고 사자후를 하는 큰스님이 없다는 사실이다. 좀 민망한 말이지만 큰스님으로 존경받는 스님 가운데 도리어 '이상한 말씀'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불자들 사이에서 어느 스님에게 천도재를 지내야 조상천도가 잘된다더라 하는 풍문이 나도는 것을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래서야 불교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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