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言富樓那야
如汝所說淸淨本然커니
云何忽生山河大地리요
汝常不聞가
如來宣說性覺妙明하며
本覺明妙아
富樓那言唯然世尊 我常聞佛宣說斯義
이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부루나야 네가 말한 것과 같이 청정하고 본연한데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겼겠느냐? 그대는 내가 늘 ‘성각(性覺)이 묘명(妙明)하고 본각(本覺)이 명묘(明妙)하다’고 하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부루나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어! 저는 항상 부처님께서 그러한 이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佛言汝稱覺明은
爲復性明을
稱名爲覺가
爲覺不明을
稱爲明覺가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대가 지금 각(覺)과 명(明)을 말하는 것은 깨달음의 성품이 본래로 밝다는 뜻에서 각명(覺明)이라 칭하는 것이냐? 깨달음의 성품이 밝지 못해서 이를 밝혀야 한다는 뜻에서 명각(明覺)이라 칭하는 것이냐?”
富樓那言 若此不明을
名爲覺者인댄
則無所明이니다
부루나가 말했다. “만약 이와 같이 밝힐 것이 없는 것을 그대로 각(覺)이라고 한다면 굳이 애써 밝힐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佛言若無所明 則無明覺이니라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만약 너의 말대로 밝힐 것이 없는 것을 각(覺)이라 한다면 밝혀야 할 각(覺)도 없을 것이다.”
有所非覺이요
無所非明이니
無明又非覺湛明性이라
너의 말대로 만약 깨달아야 할 것[所覺]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진각(眞覺)이 아니다. 그러나 깨달을 것[所]이 없으면 깨달음의 밝음[明]도 있지 아니할 것이다. 이와 같이 밝음이 없는 것[無明]을 어떻게 깨달음의 밝은 성품[覺湛明性]이라 이름 할 수 있겠느냐?
㊁ 叙妄 (가) 三細所起
性覺心明이니
妄爲明覺이라
성각(性覺)은 반드시 밝음[必明]이건만 부질없이 밝힐 각[覺]을 삼은 것이다.
覺非所明因明立所하고
所旣立生汝妄能하야
無同異中熾然成異하니라
깨달음[性覺] 자체에는 본래 능명(能明)과 소명(所明)을 세울 수 없는데, 명으로 인하여 능소가 성립되고 능소가 이미 허망하게 세워지면 너의 허망한 능업(能業)이 일어나서 본래 같고 다름이 없는 가운데 치연하게 다름을 이루는 것이다.
異彼所異하야
因異立同하고
同異發明하야
因此復立無同無異하니
如是擾
亂相待生勞하고
勞久發虛하야
自相渾濁하니
다른 것을 다르다고 분별하여 그 다른 것으로 인하여 다시 같음이 성립되고, 같음과 다름이 분명히 구분되어 드러남으로 인하여 다시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음을 세우게 되는데 이렇게 흔들리고 어지러운 것이 서로 작용하면 피로[勞]가 생기고 그 피로가 오래되면 티끌[塵]을 일으켜서 자연 서로 혼탁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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