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성적 소수자를 차별하는가
이승욱 심리치료사
들어가면서
성적 소수자(이 글에서는 특히 성전환자들을 지칭한다)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지금의 한국에선 지나친 호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지금 한국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 살리기”이다.
이 ‘경제’란 놈은 내 기억에는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죽어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놈을 살리기 위해 이번에는 유권자의 절반이 경제에 표를 던졌다. 비법도 불법도 탈법도 다 눈감아주고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이 눈감은 사람들에게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라니, 너무 현실을 벗어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또는, 이런 생각이다. 차라리 장애인이라면 그 불편함이 눈에 보이고, 측은지심도 생기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건 그들의 성적 취향 아닌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 따라오는 불편함이야 그들의 몫이다, 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등산을 하기로 결정하고 산을 오른다면 다리 아픈 것이 당연한 것처럼, 개인의 성적 취향과 선택에 대해 왜 사회와 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가, 하고 묻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이렇게 절실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이 사회는 시간과 관심과 마음을 내 줄 여유가 없다고 항변한다.
그런데도 이런 글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건 다름 아닌 부처님이 (당시의) 소수자들에게 보이신 자비심을 닮기 위해서이다. 부처님께서는 칠흑같이 어두운 그믐밤에 특별히 법문을 하시곤 했는데, 그 대상들이 낮에는 법문을 들으러 오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스승의 눈을 피해 오는 외도들도 있었고, 천상계의 존재들도 있었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주류의 삶에서 비켜난 소수자들이 그 특별 법회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는 성적 소수자들, 예를 들면 ‘한 달의 절반은 남자이고 절반은 여자로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남자의 몸을 받고 태어난 여자, 또는 여자의 몸을 받은 남자들, 생리적 이유로 인해 양성의 성기를 모두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부처님이 그들에게 특별법문을 하셨다는 것은 ‘나의 고통과 너의 고통이 모양과 구성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는 것’을 실천으로 가르쳐주시는 것이라 생각한다. 격무에 시달리고 과다한 알코올에 찌들고 황폐한 가족관계로 인해 시름하는,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청산하고 제대로 살고 싶은 40대의 중년 남성들이 겪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연민과 고통이, 남자의 몸을 받아 태어났지만 이 생리적 조건을 제대로 청산하고 본래의 자기 모습으로 살고 싶은 한 존재의 정체성 혼란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부처님은 말씀해주신다.
성적 소수자(성전환자)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분명한 가르침은 섹스는 꼭 성기로만 하는 것이 아니며, 성기가 곧 성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 성기의 모양과 신체 구조를 떠나 관계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들의 구도 행위와 같은 여정이 모든 인간 존재들이 똑같이 고민해 보아야 할 화두라는 것이다. 그들의 화두를 보며 내 공부를 점검해 보자. 서울 시민이 먹다 버린 음식의 양이면 대구시 인구가 다 먹고도 남는 상황에서도 경제가 죽었다고 발악하는 이 나라의, 그 놈의 경제는 원래 불생불멸하니 잠시 버려두고 말이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일반의 인식
역사상 최초로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나라는 뉴질랜드다. 지구의 남반구, 세계의 변방 같은 이 섬나라 국민들은 지난 밀레니엄 마지막 해에(1999년) 흥미로운 선택을 했다. 그 해 총선거에서 최초로 성전환자 국회의원을 선출한 것이다. 그것도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농촌 지역에서 인종적으로도 소수자인 원주민 마오리의 후예이자,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한 조지아나 베이어(Georgiana Beyer)가 지역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른바 주류(main stream) 사고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예측 불가능의 다양성, 선도적 변화, 전통의 전복 등에 관대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그 구성원의 독립적 사고, 개별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뉴질랜드는 세계의 변방이 아니라 진취의 선봉에 서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비교해 한국 사회와 구성원들이 성적 소수자가 처한 삶의 조건에 주의를 기울이고 성적인 다양성을 인정하며 그들을 평범한 한 인간으로 자연스럽게 대우해주는 것은 아직은 어렵기만 한 일인 것 같다. 얼마 전 지방 도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교사 직무연수에 강의를 하게 되었다.
한국 공교육의 다양성 부재에 대한 강의를 하다가 잠시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성전환자에 관해 설명을 하는 도중 한 연수 참가 교사가 질문을 던졌다. 질문의 요지는 ‘그런 성기’를 가지고 어떻게 성생활을 하는가였는데, 나는 그 질문이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평균적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성전환자에게 기울이는 관심의 수준은 대체로 성적 활동에 관한 호기심 수준이다. 그들의 성기는 어떤 모양일까, 어떻게 섹스를 할까, 그게 과연 가능은 한 걸까 등 성적 만족, 성기 중심의 사고 수준이다. 이런 일차원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성적 소수자의 문제에 접근한다면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할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의 성적 욕구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성전환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자신의 존재대로 살기 위해 힘든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단순히 성적 취향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성적 존재에 관한 진통이고 과정이다. “한우를 한우라 하는데 어찌 한우라고 하느냐고 물으신다면…”이라는 광고 카피처럼 (남자의 몸을 받아 태어났지만) 여자여서 여자라 하는데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성적 활동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마라. 그건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그런 질문은 곧 당신은 당신의 섹스 파트너와 어떤 자세로 섹스하기를 즐기냐고 공개적으로 묻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위다.
성전환자들이 겪는 발달상의 경험들
지금부터 설명할 성전환자들이 겪는 성장 경험들은 평균적 차원에서의 이야기이므로 모든 성전환자들에게 일반화시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부분 또는 많은 성전환자들은 아래의 경험들을 모두 또는 적어도 몇 가지라도 겪으며 성장하게 된다.
◆ 유년기
대부분의 성전환자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아주 이른 시기부터 알게 된다. 어떤 아이들은 두세 살부터 자신이 태어날 때 가지게 된 성(출생성)과 반대의 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당연히 이런 아이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출생성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게 되지만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표현하기도 어렵다.
또래 아이들과 놀 때 출생성과는 반대의 성 역할을 하려 하고, 반대의 성을 가진 아이로 대접받으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가족, 또래 친구, 사회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위장하거나 숨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많은 성전환자들은 어려서부터 위장된 거짓 자아를 만들어내어 그것이 진짜인 것처럼 행동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거부당하거나 바보 취급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에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게 되는데, 한편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감정도 가지게 된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 성전환에 관련된 자신의 생각에 대해 수치심을 점점 더 키우기도 한다.
성전환을 원하는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성이 마법적으로 바뀌는 환상을 많이 하는데, 하느님이 밤에 자는 동안 기적을 행하여 아침에 깨어 보면 자신이 원하는 몸으로 바뀌어 있는 상상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환상은 대체로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하기 때문에 주변의 부모, 교사, 친구들조차 이런 아이들 내면의 분투와 혼란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런 이유로 인해 많은 성전환자들이 어려서부터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자라게 된다. 여기에 불안정한 가족 상황, 잘못된 부모의 양육이나 발달상의 다른 충격과 맞물리는 경우도 흔하다. 이럴 때 아이들이 겪는 마음의 부담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일 것이며, 성장과정에서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내면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 청소년기
성전환을 원하는 아이가 청소년기를 맞이하는 건, 그들에겐 한 편의 공포영화다. 어렸을 적, 일어나보면 자기 몸이 원하는 성으로 바뀌어 있기를 바랐던 그나마 기적에 대한 소망도 출생성의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고 여러 가지 신체적 변화가 눈에 뜨이면서부터는 절망으로 변하게 된다.
일반적인 아이들에게도 사춘기의 여러 가지 변화는 감당하기 벅찬 일이다. 하지만 성전환을 원하는 청소년들은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극심한 혼란과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외모가 자신의 내면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절망감은 종종 자살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자신의 몸이 가진 성적 기능은 자신이 원하는 성적 활동과는 반대이며, 결코 자신의 몸으로는 자신의 성적 기대를 만족할 수 없다는 절망감 또한 자살충동을 가중시킨다.
이 시기에는 당연히 성적 욕구가 왕성하게 일어나 때로는 모든 생각과 행동의 관심이 섹스와 같은 성적 활동에 쏠리게 된다. 이런 욕구가 성전환을 원하는 청소년들에게 또 다른 혼란을 가중시킨다. 그들이 만약 자신의 출생성과 같은 성을 가진 대상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이 게이이거나 또는 레즈비언인가 의심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져왔던 성전환의 소망이 진실인지 그냥 상상이었는지에 대해서도 혼란을 겪게 된다.
이런 혼란을 통과해 나가는 과정은 개인마다 다양하다. 어떤 청소년은 평생 이것을 혼자 간직하면서 숨기고 살기로 결정한다. 또는 은밀하게 자신의 소망과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대상을 찾기도 한다. 또 어떤 용감한, (역설적으로는 스트레스를 가장 강하게 경험하고 있는) 성전환을 원하는 청소년은 자신의 성 정체감을 당당히 밝히고 자신의 몸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청소년들은 가족과 학교의 반응에 한 번 더 상처를 경험한다.
성전환 수술을 가능한 한 빨리 하는 것이 나중에 적응하여 살기가 더 좋다고 한다. 문제는 한국은 물론이고 서양의 경우에도 16세 이하의 성전환자에게 호르몬 투여를 동의하는 의사는 거의 없다. 그러나 호르몬 투여 없이는 원래성(출생성이 아닌, 자신이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고 믿는 성)의 신체 생리적 조건을 가질 수 없기에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기가 어렵다.
◆ 성인기
십대 시절에 이미 자신의 출생성과 동일한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꼈거나 또는 이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겨 본 사람은 성인 초기, 20대 초반에 자신의 원래성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한다. 현재 유럽권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도 법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이러한 시도를 가로막지는 않는다.
신체 생리적으로 수술을 진행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만 없다면, 그리고 본인이 수술비용을 마련할 수만 있다면, 전문가들은 수술을 가능한 한 빨리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도 주변과 사회로부터의 수용, 적응 과정 등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마음과 달라서 사십 대, 오십 대가 넘어서 수술을 감행하고 커밍아웃하는 경우들도 가끔 있다.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메종 드 히미코>는 중년이 지나서 수술한 여성(출생성은 남자)들이 등장하는데,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살다가 커밍아웃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필자가 뉴질랜드에 거주할 때, 아이도 넷이나 있고 아내도 있는 한 중년 남성이 자신의 원래성(여성)으로 성전환을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심지어 한국의 KBS 정도 되는 방송국에서 인터뷰 취재를 했는데, 그는 작은 시골 마을 수의사였기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게다가 그는 아내와 헤어지지 않고 그대로 부부로 살고 있으며 아이들도 점점 아버지(?)를 여자로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호칭은 ‘Mom, Dad’가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 부부는 자매처럼, 부부처럼 그렇게 살고 있는데, 다행히도 아내가 모든 것을 인정, 수용하였고 아이들 또한 아버지의 정체성과 존재를 인정했기에 그런 삶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처럼 다행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신체 생리적인 문제나 금전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수술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한다면 현실에서 연옥에 갇혀 지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고통과 혼란 상태에서는 중요한 많은 관계를 맺는 데 실패할 수도 있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병리적 행동을 할 수도 있으며, 직장생활이나 경제활동을 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사실 현실적으로는 많은 성전환 희망자들이 자신의 출생성을 유지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보이며 살려고 노력한다. 남자의 출생성을 가진 사람들은 결혼을 해서 아버지로 살아가고 여자들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 역할을 수행한다. 남자들은 일반 남성들이 하는 많은 활동, 퇴근 후 술 마시기나 운동 경기 같은 취미 활동을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은 대체로 성전환에 대한 소망이 축소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는 가족과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또는 성전환을 한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성공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출생성의 삶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성의 진실을 거부하는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내면에서는 견디기 힘든 정신적 억압이 진행되고 있기에 우울증, 격심한 소외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에 빠질 수도 있다. 직장에서는 무능력자로 낙인 찍혀 직업을 잃을 수도 있으며, 언젠가는 불행한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도 온다. 이들은 일견 겉으로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몰래 소망성의 복장을 착용하거나(Cross dresser―줄여서 CD) 또는 상상 속에서라도 그런 행위를 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 삼십대나 사십대에 성전환 수술을 감행하는 경우도 있다. 삶의 경험이 쌓이고 난관을 헤쳐 나갈 내면의 힘이 길러진 나이가 되었기에 이때 이르러서야 결정을 하는 경우다. 그러나 이 경우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는 경우들이 많고, 출생성으로 쌓은 사회적 관계와 기반을 포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하지만 원래성으로 바꾼 다음 성전환자들의 삶은 대체로 행복하다고 보고되고 있다. 더 이상 거짓의 삶을 살지 않게 되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삶이 통합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성전환을 하고 커밍아웃을 한 뒤에도 주변의 냉대나 호기심 어린 눈길 때문에 불편함을 겪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내면과 외양이 통합된 편안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런 마음의 평화를 획득하기 위해 성전환자들은 혹독한 난관을 거쳐야 한다.
성전환자로 살아가기
한국에서 성전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주민등록증의 뒷 번호 때문이다. 자신은 남성이기에 남자로 살고 싶지만 2로 시작하는 주민등록증 뒷 번호는 설명의 여지 없이 그들을 정신병자로 몰아버린다. 반대의 경우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그들은 호적을 정정해야 한다. 아니면 이 사회에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고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로부터도 추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적을 정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성전환 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성전환 수술을 받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짐작하다시피 수천만 원에서 심한 경우 억대가 되는 수술비를 마련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수술을 받을 수 있다 해도 한국 사회는 이를 호락호락 허락하지 않는다.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일단 정신과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하다. 이 진단서는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규정한 정신병 진단 매뉴얼 DSM-IV 중 성 정체감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G.I.D)의 진단 기준에 부합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 성전환 수술
정신과적 진단이 있으면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이 수술은 대단히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고 호르몬에 대한 이해와 수술법이 개선된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최초의 성전환 수술은 1952년 미국의 퇴역 군인이었다). 정상적인 수술을 하려면 성전환자의 정신적 적응을 위해 적절한 상담이 병행되는 것이 좋으나 한국에서 그런 일은 호사스러운 일이다.
수술을 받기 전에 에스트로겐 성분의 호르몬을 몸에 주사해야 한다. 그 양을 줄이기 위해 먼저 고환절제 수술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는 호르몬 가격이 매우 비싸서 보통 병원에서 투약 받지 않고 약국에서 구입해 스스로 주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양을 잘못 조절하여 부작용이 생기거나 심지어 생명까지 위험한 상황도 발생한다.
출생성이 남자인 경우 정식 수술은 질 성형, 음경제거, 클리톨리스 성형 등 여러 과정을 거친다. 그 밖에 유방 확대, 코 성형, 머리카락 이식, 모근 제거, 목젖 제거, 음성을 높이기 위한 성대 변환 수술을 함께 받기도 한다. 이 정도 수술까지 받게 되면 수술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난다. 질 성형은 상대적으로 단순해서 음경 피부나 장 조직과 나란하게 질구를 만들고 음낭 피부를 음순으로 만든다.
출생성이 여자인 경우 자궁 적출과 난소 적출, 유방 제거, 음경 성형의 과정을 거친다. 음경을 만들어 달아야 한다는 것인데, 주로 왼쪽 팔목, 다음에는 오른쪽 팔목의 살을 떼서 남근 모양을 만들어 이식 수술을 한다. 외국의 경우 음낭 안에 작은 수동 펌프를 달아 수압으로 발기를 일으키는 장치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런 최신식(?) 음경은 매우 비싸서 적어도 미화 15,000불 또는 그 10배 정도의 가격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음경에 생식 능력이 없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그래야 호적 정정이 가능하다는데, 이런 아이러니가 있는가. 생식 능력이 없어야 행정적으로 성전환을 인정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 꼭 남근이 있어야만 인정하겠다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생식 능력까지 생길 수 있는 수술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능력까지 생길 수 있는 의료 기술이 개발되면 좋겠다. 어떤 성전환자들은 이런 능력을 간절히 원하기도 할 테니 말이다.
◆ 한국의 성전환 수술
최근 조사에 따르면 외국의 성전환 수술 성공률은 97%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먼 나라 이야기다. 한국은 아직 성전환 수술에 대한 의료 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종종 생명을 위협하는 의료 사고가 일어난다고 한다. 당연히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고 의료사고가 일어난다 해도 성전환 수술이라는 이유 때문에 피해자가 떳떳하게 항의할 수도 없다고 한다.
의료 사고를 낸 의사들 중에는 심지어 수술해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책임을 묻는다며 도리어 환자를 욕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성전환 수술에 관해서는 자료를 찾을 수 없어서 그 성공률이나 예후에 대해 여기서 기술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한국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어렵게 남자로 또는 여자로 자기 성으로 되돌아간 사람들은 많은 정신적 외상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행운을 누린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감내해야 하는 성전환자들의 마음의 아픔은 쉽게 치유되기 어려울 것 같다.
불교는 성적 소수자를 차별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부처님은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성적 금기를 율장에서 상세하게 설명해 놓으셨다. 심지어 지나치게 세심(?)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옮기기에는 양도 많고 글을 전개해 나가는 데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에 생략하지만, 성전환에 대한 말씀을 찾기란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처님은 소수자의 친구이자 보호자였다. 부처님은 부처님 앞에 무릎 꿇고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품어 안으려 하셨다.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낮에는 떳떳이 돌아다닐 수 없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던 사람들을 배려하여 그믐밤에 법문을 하셨고, 그들은 대부분 어떤 이유에서건 사회적 소수자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지금의 성전환자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이며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기독교의 경우, 구약을 통해 성전환을 엄격하고 분명하게 금지한다.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입지 말고 남자는 여자의 옷을 입지 마라. 이런 짓을 하는 자는 모두 너희 하나님 야훼께서 역겨워하신다.” 이런 지시는 서양의 역사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중세에 이르러 성전환자들, 복장 도착자들은 불에 타 죽거나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예를 들면 1498년 바르바라라는 성전환자가 로마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성기가 보이도록 옷자락을 치켜들고 거리를 행진해야 했는데, 결국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쇠고리에 목이 매달린 채 화형당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결코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셨고, 그 어떤 조건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비정상이라고 역겨워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맺는 말: 부처님은 성전환자?
부처님은 성전환자인가, 라는 제목이 작위적으로 자극적일 수 있겠다. 그러나 부처님은 성전환자만큼이나 파격적인 삶의 진통을 겪으셨고 또는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을 찾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신 분이다. 왕위가 보장된 왕자라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고행을 하신 것은 그렇게 사는 것이 당신이 가야 할 당연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야 이해가 되지 않고 미쳤다고 손가락질했겠지만, 젊은 고타마에게는 그것이 바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이었다.
성전환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타고났으면 그대로 살 일이지 왜 바꾸려 하느냐고 묻는다면 부처님의 삶을 욕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믿는 삶의 길이 있다.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아니라면, 그리고 그 길이 자신의 삶을 통합해 나가는 과정의 삶이라면 인정하고 지지해야 할 것이다.
추운 겨울에 구태여 산사를 찾아 삼천배를 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숙연히 고개 숙여 합장하고 공경하듯이, 고통의 삶을 살면서도 자기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성전환자들에게도 공경의 마음을 낼 일이다. 그들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과 다르지 않고, 그들의 깨달음이 우리의 깨달음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수행자는 ‘나는 더 낫다’, ‘나는 열등하다’ 혹은 심지어 ‘나는 똑같다’라는 생각도 갖지 않는다. 또한 바로 이 점에서 진리를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그는 생명(체)에 대한 자애(anudday�)와 연민(anukamp�)을 수행한다.” ■
이승욱 / ‘닛부타의 숲’ 상담클리닉 원장. 심리분석 및 심리치료사.
출처 불교평론 [34호]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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