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장의 경
“밧차곳따여, 나는 다시 태어남이란 연료가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연료가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설한다.
밧차여, 마치 불이 연료가 있어 타오르고, 연료 없이 타오르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밧차여, 나는 다시 태어남이란 연료가 있는 사람에 대한 것이며, 연료가 없는 사람에 대한 것은 아니라고 설한다.”
“세존이신 고따마여, 그렇다면 불티가 바람에 날리면서 멀리 가고 있을 경우에는 그 연료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설하겠습니까?”
“밧차여, 불티가 바람에 날리면서 멀리 가고 있을 때, 그 경우에는 바람이 그 연료라고 나는 설한다.”
“세존이신 고따마여, 그러면 뭇삶들이 지금의 몸을 버리고 아직 다른 몸을 받지 않았다면, 그런 경우에 대해서는 무엇이 그 연료라고 설하겠습니까?”
“밧차여, 뭇삶들이 이 몸을 버리고 아직 다른 몸을 받지 않았을 때는 갈애에 의해 태워지고 있다고 나는 설한다. 그런 경우에는 갈애가 그 연료이다.”
*번역 출처 전재성 박사 <오늘 부처님께 묻는다면>
*남방 상좌부 불교나 초기 불교를 신봉하는 불자들은 대승불교의 중유 中有(중음신 中陰身)를 부정한다. 중유를 인정한다면, 3계 5도 혹은 6도인 중생계에 대한 설명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의 경은 후대에 삽입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또한, 한 몸을 버리고 다른 몸을 받기까지의 시차로 인해 이치적으로 실재적으로 위의 세존의 말씀이 사실에 어긋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사이, 간격, 시간’에 의미를 부여할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낮과 밤, 밀물과 썰물, 꿈과 꿈에서 깬 상태 등의 경계가 존재하지만 딱히 의미를 논할 무엇이 없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