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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 記憶을, 지우고 싶어서일까. 다시금 눈을 뜨는데, 스산한 창밖 풍경을 무심히 담는 눈길에 피로가 묻어온다. 눈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눈으로 마음을 전할 때면 서두르지 않게 됨을. 진정한 것은 아주 서서히 스며든다. 몇 걸음 뒤의 슬픔이 그러지 않던가. 슬픔이, 11월의 오늘처럼 입을 다문 채 다가온다. 육체의 깊숙한 곳으로, 깊숙한, 너무 깊숙해서 상상조차도 불가능한, 그곳까지. 그러나 그 출렁거림에 익숙해지면, 더이상 슬픔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無味한 나는 시선을 거둔다. 내 밖의 잠재적 슬픔에게로.

횡단

횡단 /  그 무엇,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육체의 일부가 절단되었지만 수술을 거부하고, 거의 자살하다시피 세상을 등졌다네요. 그에게 육체란 현실로 문질러서 흐려져 버리는 그 무엇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지,  말하자면, 상징적 질서가 존재를 횡단한다? 횡단이라... 몇 해 전 해질녘 시장 골목길에서 술취한 자동차 앞바퀴에 오른쪽 발등이 깔렸지. 비가 내리면 발등에 움푹 패인 바퀴 자국에 빗물이 고이더만. 횡단.

낡은 집

낡은....집 / “집이 낡으면 그늘이 깊어지지. 사람이 늙으면 몸이 무거워지는 법이거든. 그늘이 두껍게 쌓이면 어느덧 집의 윤곽이 무너지고, 몸이 무게를 더하다 보면 덜컥 주저앉아 영영 일어나지 못한단 말이야. 그 좋은 예가 바로 저기 있군.”그가 침대로 다가가 여자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여자 옆에 팔베개를 한 채 몸을 눕힌다. 주위를 둘러싼 공기가 휘청거린다.“불행히도, 이 친구는 우울하지. 단순함과 소박함을 부인하는 것이란 말이야. 그런 탓에, 그녀의 눈빛은 참으로 고단하거든. 이 친구의 뿌리를 뽑아내 본다면 무엇이 딸려 나올지 궁금해지는군...가끔은 표정만큼 우리 시선을 기만하고 곧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하지. 언제고 한번 칼날로 떠내서 그 밑에 무엇이 도사리고 ..

진지하지 못한 삶이 갖는 /

진지하지 못한 삶이 갖는 /  술이 없는 하루를 상상하기란 매우 어렵지. 왜 내가 술에 젖었는지 그 이유를 나 자신이 평생 몰랐으면 하거든. 알게 된다면 싫어해야 할 이유도 분명해질 터이니 말이지. 이렇듯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버릴 수 없는 몇 가지가 있기 마련이라구.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말이야. 삶은 경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일탈의 꿈을 늘 잊지 않지. 나는 혹 잊는다 하더라도, 그 꿈이 나를 잊지 않는단 말이야.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표정 너머 또다른 어떤 표정이 도사리고 있는지 궁금해 하듯이, 실존은 시선이 녹아내리는 소실점 저 너머로 미끄러져 가고자 하는 욕구에 시달리거든. 자의식은 더욱 이를 부추기더라구. 거품처럼 흘러내리는 자의식의 과잉은 바닥을 드러낸 채 초조해 하는 결핍의 동의어에 다..

한국인의 기질과 모국어

한국인의 기질과 모국어 며칠 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모국어인 한국어에 대한 애틋함을 새삼스럽게 되새기게 합니다. 지구적인 차원에서야 뭐 한국어가 소수언어인 까닭에 홀대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최근 국력 상승과 한류의 영향도 수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깁니다. 물론 국가와 민간 차원에서도 오랫동안 한국문학의 세계화 노력에 많은 공을 들였고, 좋은 번역자들을 만났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겠지요.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언어권이든 좋은 작가, 작품들은 당연히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어가 지닌 깊은 성찰력, 표현력, 미학적 감수성 등이 좀더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싶어요. 책을 읽지 않는 요즘 세태에 반전의 동력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큽니다. 뜬금없..

카테고리 없음 2024.10.16

인과응보의 두 갈래 이해

인과응보의 두 갈래 이해 인과응보, 인연과보, 업보, 업인과보 등등으로 회자되는 업설은 진리인 연기법과 맞물림과 동시에 어쩌면 우리 현실에 가장 정합적이고 또한 지극히 실용적인 대상입니다. 이는 곧 심오하기 그지없는 진리인 연기법의 깊은 속내의 빗장을 열어젖히는 마중물이라 할까요. 삶에 대한 물음은 소박하고 단순합니다.‘나는, 왜, 어떻게 해서, 여기에 있느냐’입니다.이 물음에 대한 답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표층적이며 통속적이며 일상적입니다. 두 번째는 심층적이며 초월적이며 신비적입니다. 첫 번째의 답은 이렇습니다.‘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못된 짓 하면 고통을 받는다 善因樂果 惡因苦果.’크게 반박할 무엇이 없는 이치라 해도,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

편지 2. 미분, 그리고 언어

미분, 그리고 언어 어떤 한 점에서 또 다른 어떤 한점에 선을 그어하나의 직선을 만들면 기울기를 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x축과 y축으로 이루어진 좌표평면에서 xy축 모두 양의 상태인 1사분면의 어떤 하나의 점즉 (a,b)에서 우측으로 a가 x만큼 증가하고 위로 b가 y 만큼 증가한 (a+x,b+y)라는 점을 이어 직선을 그으면 그 두점 사이의 평균변화율, 즉 기울기를 구할 수 있습니다 즉, (b+y) - (b)/(a+x) - (a)b의 증가량을 a의 증가량으로 나눈 값이 기울기입니다따라서 기울기는 x축의 변화가 얼마나 y축의 변화를 초래하는지를 측정하는 것입니다따라서 평균변화율 즉, 기울기는 두점 사이의 시간 등의 변화에 따른 변화율의 평균을 의미합니다두 점을 연결하는 방법은 무한대의 경우의 수가 ..

<삼프로tv> 기독교인과의 대화

기독교인과의 대화 유튜브 채널 에 흥미로운 자리가 펼쳐졌더군요. 얼마전에 서울대 종교학과 강성용 교수와 불교 얘기를 했던 때문인지 균형을 맞추고자 기독교인인 연세대 김학철 교수를 모셨더군요. 별 감흥은 없었습니다. 유일신론자, 실체론자, 플라톤주의자, 본질과 현상의 이원론자의 강론은 표현이 아무리 매끄럽고 그럴듯해 보여도 그 사유와 논리의 밑천이 어설픈 까닭입니다. 오래전에 기독교인 친구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답을 준다면 저도 기꺼이 기독교인이 되겠다는 조건으로 말이죠. 1. 무지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왜 삶과 그 의미를 모른 채로 태어나는지, 맹목적으로 살다가 죽을 때까지도 자신을 존재케 한 절대자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왜 존재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극적인 예로, 선천적 지적 장애인 ..

업(의도)의 중요성

업(의도)의 중요성  삶에서 희로애락을 젖혀놓는다면 생사가 남습니다. 태어남과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정말 깨우쳐야 할 궁극의 대상입니다. 죽음은 태어남을 조건으로 하기에, 결국 태어남의 조건을 밝히는 것이 관건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태어남은 존재하고자 하는 갈망을 조건으로 합니다. 12연기에서 10번째 고리인 有(존재)입니다. 존재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아직 현재 삶의 연장선에 있을 경우에는 경험적 개체인 존재의 성향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현재의 삶이 다한 경우에는 다음 생으로의 윤회 조건으로 전개됩니다. 또한 존재는 집착(取)을 조건으로 형성됩니다. 이것이 바로 업(業)입니다. 업은 생각, 말, 몸짓의 3가지 형태로 드러납니다. 붓다께서는 업을 곧 의도(의지)라 말씀하셨는데, 그 ..

진리인 연기법

진리인 연기법 연기는 ‘상호의존적 발생’입니다.연기하는 법(존재)의 속성은 無常, 苦, 無我입니다.무상은 영원하지 않고 변화한다고는 불만족, 불완전, 실존의 한계상황무아는 고정불변의 실체(아트만)는 없다 연기하는 법의 존재형식은 관계 속에서의 인과적 질서이며,인과는 동시성, 중첩성, 다의성의 성질을 갖습니다. 공시적 차원에서는 이해가 어렵지 않습니다. 부부가 좋은 예입니다. 아내와 남편은 동시적으로 발생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원인이자 결과이며, 남편 또한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는 다른 상황, 가게에서는 손님이며, 부모 앞에서는 자식이며, 자식 앞에서는 부모이며, 친구 앞에서는 친구이며, 직장에서는 각자의 지위로 존재합니다.그러나 통시적 차원, 전후의 시차가 주어지는 차원에서는 인과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