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如如한 날들의 閑談 75

윤회 있는가, 없는가?

윤회 있는가, 없는가?  최근 유투브에 몇몇 불교 출가승들이 윤회는 없다라는 주장을 하는 영상이 적지 않게 떠돌아다닌다.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과 익산 사자암에 거주하는 향봉스님이 대표적이다. 법륜스님이나 이중표교수도 마찬가지다. 결론인즉, 윤회의 주체 즉 아트만이 없는데 무아윤회라니 가당치 않다라는 얘기다. 윤회라면 당연히 윤회의 주체가 있어야 할 것인데,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이 無我 아닌가. ‘나’랄 것이 없는데 무슨 윤회를 논하느냐, 이런 논지이겠다. 언뜻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윤회는 존재하며, 윤회의 주체는 ‘나’라고 의심하지 않는 정신과 물질, 몸과 마음이다. 즉 실체적 자아인 오취온이다. 무아는 깨달은 자의 세계이며, 윤회하는 범부중생들의 세계는 ‘나, 내 것, 나의 자아..

고통이 성스러운 진실일 수밖에 없는 이유

고통이 성스러운 진실일 수밖에 없는 이유 삶은 그 자체로 모순적 행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살기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기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이 참혹한 삶의 아이러니라니. 돈, 사랑, 명예, 건강, 권력 등 모든 것을 쥐었든 일부만을 누렸든 삶은 여지없이 죽음으로 종결됩니다. 죽음을 거부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장치도 무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의 궁극적 의미를 붓다께서는 ‘고통, 불만족’으로 선언하셨습니다. 고따마 붓다께서 전하신 진리는 ‘연기법’이며, 연기하는 법들이 펼쳐지는 현상계의 실상을 ‘4聖諦-4가지 성스러운 진실’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4성제는 ‘고성제-고집성제-고멸성제-고도성제’입니다. 또한 연기하는 법들의 보편적 성품이 ‘3法印’ 즉 ‘無常, 苦, 無我’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4가지 음식과 알아차림

4가지 음식과 알아차림 존재인 오온을 먹여살리는 4가지 음식이 있다. 단식(團食), 촉식(觸食), 의사식(意思食), 식식(識食). 단식은 육체를 보존하고 성장시키는 물질적인 음식을 말한다. 촉식, 의사식, 식식은 정신적 요소들인 감성(受), 이성(想), 의도적 형성작용(思行), 의식(識)을 보존하고 성장시키는 음식들을 가리킨다. 단식은 고기와 채소 등 다양한 음식으로 경전에서는 험한 곳에서 길을 잃은 부부가 죽은 아들을 음식삼아 생명을 유지한다는 비유로써 단식에 조심할 것을 가르친다. 촉식은 12연기에서의 ‘촉’으로 3사화합을 말한다. 주관인 6내입처와 객관인 6외입처, 그리고 의식. 주관인 감각기능과 객관인 대상(표상), 의식을 먹여살리는 재료라는 뜻이다. 경전에서는 피부가 벗겨진 소가 거친 벽에 등을..

매트릭스와 고통

매트릭스와 고통 삶은 고통, 불만족, 불완전입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짧게나마 즐거움과 만족, 행복을 누리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며, 다시금 괴로움과 불만족, 불행이 나를 지배합니다. 4고8고가 있습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生老病死)의 네 가지 고통이 4고입니다. 이는 나를 구성하는 물질과 정신적 요소들인 5온(色受想行識)의 현실적 과정입니다. 전생 업의 과보로 받는 고통입니다. 나머지 4가지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救不得苦), 오취온고(五取蘊苦)입니다. 이는 현재진행형인 업의 과보입니다. 애별리고는 ‘사랑하는 대상과 헤어짐’입니다. 원증회고는 ‘미워하는 대상과 만남’입니다. 구부득고는 ‘원하지만 구하지 못함..

존재와 자아

존재와 자아 be, exist 삶에 대한 탐구는 결국 존재와 자아에 대한 분석과 이해이다. 신비적 체험의 영역인 종교와 실증적 학문인 과학을 젖혀놓고 얘기하자면, 이는 결국 철학적인 사유의 영역이랄 수 있다. 합리적인 이성과 추론으로써 삶의 지도, 즉 세계, 자아, 존재를 규정하고, 그 구성원리와 전개, 의미와 가치를 그려나간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지만, 철학적 사유는 라깡, 들뢰즈, 데리다 등이 포진한 현대철학에서 정점에 이르렀고, 삶의 지형 구축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존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로는 be, have, exist, consist, subsist...등이 있는데, 어떤 맥락에서 존재를 이해하느냐에 따라 쓰임새가 다르지만, be와 exist에 주목해 본다. 실존주의철학자이..

초월적 신비 체험

신비체험 양자역학, 천체물리학, 뇌과학, 인지심리학 등등 가히 과학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정신적 차원의 문제는 여전히 신비의 영역입니다. 또다른 세계와 존재들, 윤회 또한 마찬가지겠지요. 물론 지혜가 좀더 성숙해지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거라 믿습니다. 지혜가 어느 정도 자리잡기까지는 붓다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또한 체화하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인식론적 전환(교학의 철저한 이해)와 존재론적 전환(수행을 통한 인격적 탈바뀜)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상적인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분들은 예외없이 초월적 신비적 체험을 겪습니다. 초월적 신비적이라는 규정은 무지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세상사가 그렇듯, 모르면 어렵고, 알면 쉽습니다. 저 또한 보통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신비체험을 겪..

한 생각이 일어나는 그 자리

한 생각이 일어나는 그 자리 선가에서 얘기하는 ‘한 생각이 일어나는 그 자리, 그것’이 참나, 지혜, 아는 마음이라고 정의하는데, 또한 그 자리는 본래 있었던, 생각(번뇌)에 물들지 않은 순수의식이라고도 합니다. 밖으로 찾고 구하지 말며, 찾고 구하는 그 마음이 바로 그것이라고도 합니다. 본래, 원래 있었다는 것은 ‘연기하지 않는, 고정불변하는’이란 의미로, 붓다의 가르침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삿된 행위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그 자리, 일어난 한 생각을 알아차리는 그것 또한 정신적 요소인 형성작용에 지나지 않습니다. 연기한다는 것이죠. 생각의 배후에 형이상학적인 초월적인 무엇, 실체가 있다는 생각은 그것에 어떤 이름을 갖다붙인다 해도 망념, 혼란, 혼동, 착각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태도는 자연스럽게 고정..

삶은 한 편의 꿈, 연극, 영화

삶은 한 편의 꿈, 연극, 영화 삶을 꿈으로 비유하는 경우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장자의 ‘나비꿈 胡蝶夢’이 유명하지요.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다가 깬 뒤에 자기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자기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지 알기 어렵다는 얘기인데, 이를 소재로 ‘매트릭스 The Matrix'라는 영화가 대 히트를 치기도 했습니다. 가상현실 VR(Virtual Reality), 메타버스(Metaverse) 등도 같은 맥락입니다. 16세기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도 인생은 연극이며, 모든 사람은 그 무대에 서는 배우일 뿐이라고 말했죠. 굳이 유명인을 들먹이지 않아도, 사람이라면 모두 그러한 생각을 한번쯤 안해봤을 리가 만무합니다. 나와 나를 둘러싼 풍경들이 시시각각 변하고, 그런 까..

삶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

삶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붓다께서는 ‘고통, 불만족’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어떤 삶을 꾸려나간다한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셨죠. 경전에 따르면 ‘고통’은 ‘4고8고’로 정리됩니다. 생로병사 生老病死의 4가지 고통과, 애별리고 愛別離苦, 원증회고 怨憎會苦, 구불득고 救不得苦, 오취온고 五取蘊苦의 4가지 고통을 모두 합하여 8가지 고통이라 합니다. 앞의 4고는 육체적인 고통, 뒤의 4고는 정신적인 불만족을 가리킵니다. 앞의 7가지 고는 8번째 고인 ‘오취온고’에 수렴됩니다. ‘오취온고’는 안팎의 물질과 정신을 ‘내 것’ ‘나’ ‘자아’라고 여기는 탐욕과 무지로 인한 고통, 불만족입니다. 삶은 안팎의 오취온이 상호작용하여 전개되므로 결국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러..

분별과 무분별

분별과 무분별 깨달음을 궁극적 경지로 여기는 선가에서는 ‘분별’을 끔찍하게 혐오합니다. 분별이 참나를 깨닫고 확인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 봅니다. 분별을 떠난 경지인 참나는 언어와 사유로써는 닿을 수 없는, 어쩔수없이 언어와 몸짓이라는 방편을 활용하여 드러내자면 다만 알 수 없는 ‘무엇’이며 ‘그것’일 따름입니다. 손가락을 퉁기거나 세우고, 손뼉을 치고, 주장자를 휘두르면서, ‘그것, 그것!’을 외칩니다. 그러나 분별하지 않음이 또한 분별인 것을 그들은 외면합니다. 주관과 객관, 세상과 나, 번뇌와 깨달음,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닌, ‘그것’에서 모든 법이 일어나고 생멸합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법입니다. 법이라면 당연히 무상하고, 고이며, 무아인 성품을 지니고 있기 마련입니다. 영원하고 변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