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如如한 날들의 閑談 118

경전읽기의 고달픔

사막에서만 길을 잃는 것은 아니며, 숲에서도 길을 잃기 마련. 처음 불문에 들어섰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공부 환경은 참으로 풍요롭다. 그럼에도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더 고달퍼졌다고나 할까.수행 중에서도 경전 읽기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문에 익숙한 세대라 그런지, 한역 대승경전, 주석서, 법문집들은 원문과 대조하며 읽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초기경전인 니까야를 접하면서 불거졌다. 전혀 낯선 언어이기에 전적으로 역자에 의지해야만 했다.초기경전 니까야 한글번역 현황을 살펴보자.각묵스님 주도의 초기불전연구원 전재성박사 주도의 빠알리성전협회 해피스님이중표교수대표적인 번역자만 4분이다. 그런데 그분들의 소중한 결과물들이 종종 일치하지 않기에 어려..

연기, 중도의 정확한 이해

벌써 15여년 전이지만 한국에서의 대승비불설 논쟁은 질과 양에서 상당한 수준의 논쟁을 거치고, 어느쪽이 옳다보다는 불설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정리되었다.대승비불설은 대승불교 사상과 경전 성립 논의와 함께 늘 제기되었던 물음이다. 물론 종교는 객관적 사실의 영역인 학문보다, 주관적 체험의 영역인 믿음이 좀더 우월한 까닭에, 학문적 정당성과 그 수용이 마냥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대승경전이 비불설이라 주장하는 근본불교론자들도 붓다 시대와 좀더 친밀한 고층경전인 니까야와 아가마가 친설이냐는 대승론자들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경전 성립의 역사성보다는, 경전 내용이 붓다의 가르침과 일치하느냐는 사실성이 관건이겠다.불설과 불법의 진위기준은 에 4依不依, 4大敎法으로 제시되어 있..

경허와 돈오

돈오라는 점에서 내가 어디 부처와 다르겠느냐만, 다생의 습기가 깊어서...바람은 멎었으나 물결은 아직 일렁이고, 진리를 알았지만, 상념과 정념이 여전히 침노한다頓悟踰同佛, 多生習氣深, 風停波尙湧, 理現念猶侵 한형조 (2011)에 나오는 경허선사의 게송이다.경허(1846-1912)는 한국선불교 중흥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다른 한편으로는 막행막식의 그릇된 전통을 남긴 인물로, 극단적 평가를 받는 묘한 위치에 있다.여기서 문제제기의 대상은 ' 돈오 '이다. 돈오의 내용이 아니라, 수행방법론상 형식과 절차의 문제 말이다. 한국선불교는 중국 선종 6조 혜능의 법손임을 주장하고, 성철선사처럼 돈오를 수행의 방법론적 태도로 받아들인다. 깨달으면 붓다의 지위고 더이상 닦을 것이 없다. 혜능의 말처럼 오후수행불..

삶의 마지막 꽃길

일상의 번거로음, 돈과 사랑, 명예, 권력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관계를 애써 조율 하는 등등에서 벗어나 고요함과 수승한 지혜를 닦는 길. 몸은 24시간 병실에 갇혀 있으나 마음은 더없이 한가롭구나.물에 비친 그림자를 보면서 저것이 이것이 나다,내것이다 다투며 뛰어드는 5취온 현실, 매트릭스의 어지러운 풍경.사물과 존재는 사태 ㅡ파동함수붕괴, 인연발생ㅡ에 따라서 다양한 구조.기능.가치의 변곡점을 거치며 흘러간다. 일상의 나, 그 어디, 어떤 순간에 삶을 주재하는 불변의 나가 있단 말인가. 진정한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은 연기법으로 귀결되며 완성된다.사띠 하라. 如理作意 하라. 붓다의 마지막 당부처럼 방일하지 말라.

선업은 늘 좋은 과보를 낳을까?

선업은 늘 좋은 과보를 낳을까? 불교 이론의 핵심인 진리는 연기법이다. 이는 4성제에서 고성제(유전문)와 고멸성제(환멸문)를 가리킨다. 그리고 고집성제는 고성제의 조건으로 무지와 집착을 밝히며, 고멸도성제는 고멸성제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수행론으로 8정도인 바 이것이 곧 선업이다. 그런 즉 인식론적 차원에서의 이해를 떠나 일상에서의 우리 행위는 8정도인 선업에 초점을 맞추어야 마땅하다. 인간의 행위는 세 가지로 나뉜다. 사유, 언어, 몸짓. 언어와 몸짓은 의도적 사유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므로 결국 업은 의도라 해도 무방하다. 문제는 업에 대한 우리의 이해이다. 선업은 늘 좋은 과보를 낳아야 하고, 불선업은 늘 나쁜 과보를 낳아야만 하는지? 의도가 아무리 선하다 해도 대체로 결과가 기대에 미..

그 모든 것의 시작, 처음

그 모든 것의 시작, 처음 삶은 신비합니다. 이는 곧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고백입니다. 인류 지성사는 이러한 신비의 영역을 벗겨내고, 무지를 깨뜨리기 위한 장엄한 서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천체물리학, 양자역학, 생명과학, 뇌과학, 인공지능, 심리학 등의 학문은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냈고, 또 어제의 업적이 무시될 만큼 환상적인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를 궁금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정신과 물질의 처음, 시작은 어떤 것이었을까? 시간과 공간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시작, 처음을 알면 그 과정과 끝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사유와 관찰은 제 1원인에 대한 무한소급의 오류에 빠지거나, ‘부동의 원동자’라는..

일체(一切)란 무엇인가

일체(一切)란 무엇인가 붓다께서는 일체(세상)가 무엇인지 묻는 제자에게 일체란 12입처(入處)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입처는 익히 알다시피 인식주체인 6근과 인식대상인 6경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6외입처와 6내입처를 가리켜 12입처라 합니다. 입처는 6근과 6경에 어떤 자리가 있음을 가리킵니다. 곧 마음이 들어가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어떤 마음이 자리하느냐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인지와 태도가 달라집니다. 6외입처에 하나님이나 브라만 등의 본질이 자리하면 객관적 실체론, 6내입처에 아트만, 자아, 참나가 자리하면 주관적 유아론의 덫에 걸립니다. 불교는 당연하게도 이 모두를 여윈 연기론입니다. 아공법공(我空法空)입니다. 맛있는 음식, 멋진 풍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과 풍경의 속성에 좋은 맛과 멋짐..

우주의 신비, 타임슬립과 타임루프

우주의 신비, 타임슬립과 타임루프 인간은 막연하나마 우주를 동경하면서 성장합니다. 그리고 갈릴레오, 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스티븐 호킹 등의 훌륭한 과학자들에 의해 그 신비의 세계를 조금씩 엿보게 되었죠. 물론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고작 4-5%만을 밝혀냈을 뿐, 그 나머지는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설정해 놓았을 따름입니다. 아인슈타인이 그렇게 열망했던 통일장이론(TOE, 모든 것의 이론) 또한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놓여 있습니다. 그 숙제를 풀었다며 끈이론이 등장했지만, 이는 관찰과 검증이 불가능한 관념적 차원이라서 학계에서는 신뢰를 주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 양자과학이나 생물학, 심리학 등이 불교적 사유에 접근하고 있지요. 이는 곧 2600년 전 붓다의 ..

매트릭스에서의 탈출 가이드 - 12연기

매트릭스에서의 탈출 가이드 - 12연기 우리는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계를 진실된 사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각하고 지각하는 이 생생한 순간이 허구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2600여 년전 고대 인도의 성자 붓다께서는 그러한 태도는 우리의 무지와 욕망에서 비롯한 착각이라고 단호히 일깨워주셨습니다. 요즘 언어로 얘기하자면, 증강현실 AR, 가상현실 VR, 매트릭스 matrix, 시뮬라크르simulacre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눈앞의 현상계는 진실하지 않으며, 우리의 무지와 욕망으로 덧칠된 망념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진실한 삶의 본모습은 무지와 욕망을 걷어내면 당연히 드러나겠지요. 간략히 추리자면, 무지는 존재를 영원하고 불변하는 실체로 이해하는 태도입니다...

불가지론과 여실지견

불가지론과 여실지견  뇌과학에서는 정신적인 인식과정을 뇌신경세포의 작용으로 이해한다. 바깥 사물인 대상에 대한 정보를 감각기관이 입력하면, 그 데이터를 뉴런과 시냅스를 토대로  화학신호와 전기신호로 전용한 후에 분석과 판단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주체의 행위가 형성된다. 즉 입력 -> 판단 -> 출력의 시스템이 원활하게 진행되면서 대상과 주체의 상호작용이 또한 형성된다. 지극히 유물적 환원론이다. 인식과 판단, 그리고 행위의 조건인 의도. 이러한 정신작용이 물질과 상호의존적이지만 전혀 다른 실재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이해하지 못한다. 유기체는 물질 일원론이 아니라, 물질.정신 이원론이다. 그런 까닭에 바깥 대상의 실체 또는 본질을 결코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연하지만, 개미나 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