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如如한 날들의 閑談 75

법수에 따른 불교교학의 핵심

법수에 따른 불교교학의 핵심 불교 교리는 방대하고 심오하면서 또한 체계적입니다. 정보화시대이니만큼 책, 인터넷, 유투브 등 온갖 곳의 다양한 정보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하고 풍성한 만큼 오히려 길을 헤매기 십상이기도 합니다. 상좌부 계통의 기본지침서는 ‘온(5온), 처(12처), 계(18계), 근(오근), 제(사성제), 연(12연기)’으로 정리해 놓기도 했지만, 교리의 점진적인 이해 측면에서 질서정연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법수에 따른 체계는 묘하게도 교학의 점진적 순환적 이해와도 어울리겠다는 판단에 올려 봅니다. 12-12연기 3-3법인 4-4성제 5-5온, 5취온 6-6내외입처 7-7각지 8-8정도 9차제정과 10정도를 집어넣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교학의 ..

10가지 인지, 판단

10가지 판단 붓다께서는 10가지 유념해야 할 인지작용(想, sanna)을 말씀하셨습니다. 인식의 토대는 인지입니다. 인지에 따라서 외부 정보에 대한 해석과 판단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벌어지게 됩니다. 정치적 파벌인 보수와 진보의 견해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까닭도 인지에서 비롯합니다. 혹은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견해가 같다 해도 그 안에서 거칠거나 미세하게 견해가 나뉩니다. 이 또한 개개인의 인지의 구조, 성분이 달라서입니다. 인식(입력)-> 마음-> 행위(출력) 과정을 고려하면, 인지는 ‘판단’작용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감각기관인 6내입처가 외부 대상인 6외입처를 인식한 결과, 감성(受)과 인지(想)가 형성됩니다. 감성은 인지와 함께 마음(心) 또는 심리를 형성합니다. 감성 즉 느낌은 생명체..

전생체험

전생체험 철학적인 사유가 뛰어넘지 못하는 경계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 직전, 혹은 유사죽음의 경계를 인식할 수는 있지만, 죽는 그 순간에 새로운 몸과 정신(5온)이 상속되기 때문에 이전 삶의 경험들은 단절됩니다. 어쩌면 재생 후에 전생의 기억이 또렷하다가 점차 흐려져서 완전히 지워져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몇몇 경우에 전생의 기억을 또렷히 진술하기도 하니 말입니다. 어찌되었든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자연사, 질병사, 사고사 등 주변에서 갖가지 형태의 죽음을 목격하며, 나 또한 그와 같은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자연스럽게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삶 이후에도 또다른 삶이 펼쳐질 것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윤회, 전생체험에 대한 연구와 결과물들은 적지 않게 쌓여 있지만 주류학..

식과 명색

식과 명색 붓다께서 체득하신 진리인 연기법과 그 법칙의 현상적 전개인 12연기는 인류사에 획기적인 이정표라 할 수 있습니다. 무명과 갈애로 인하여 고통스러운 삶을 끝없이 되풀이해야 하는 범부중생에게 이보다 더 기쁜 복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류사에 명멸한 숱한 성인과 현자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붓다께서만이 삶을 정확히 진단하고(苦聖諦,) 그 원인을 파악하고(苦集聖諦),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목표를 설정하고(苦滅聖諦),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苦滅道聖諦)을 제시하셨습니다. 12연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명 -> 행 -> 식 명색 -> 6입 -> 촉 -> 수 -> 애 -> 취 -> 유 -> 생 -> 노사.수비우고뇌 이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지분이 ‘식 명색’입니다. 12연기를 3세..

무아윤회 유아윤회

무아윤회 유아윤회 윤회의 주체가 무엇이냐는 의문은 ‘무아윤회’로 정리된 듯하면서도 종종 다시금 불거지곤 한다.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진리인 ‘연기법 緣起法’에 따르자면, 연기하는 법의 속성, 성품, 특징은 자연스레 ‘無常, 苦, 無我’이다. 윤회는 연기하는 법들의 순환, 반복, 상속이다. 그렇기에 윤회의 주체는 무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아윤회는 깨달은 자들의 세상일 뿐이다. 범부중생에게 무아윤회는 없다. 오로지 유아윤회일 뿐이다. 붓다께서는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속박된 중생은 윤회의 그 처음을 알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12연기의 처음 지분인 무명의 시초를 알고자 애쓴다 한들 헛수고에 지나지 않고,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이나 붓다 수준에 이르러야 알 수..

부처님이 처음에 달성한 깨달음은

부처님이 처음에 달성한 깨달음은 부처님이 처음에 달성한 깨달음은 예류과였다는 증거가 경에 보인다. 의 첫머리인 에서 “이와 같이 저에게 들렸습니다. 한때 세존께서는 우루웰라에 거처하십니다. 네란자라 강 언덕의 보리수 아래에서 ‘첫번째로 확연히 깨달으십니다.” 이어서 부처님은 7일 동안 고정됨에 들었다가 빠져나와서 밤의 초반에 12고리의 순행을, 밤의 중반에 12고리의 역행을, 밤의 후반에 12고리의 순행과 역행을 분석관찰한다. 그리고 각각 일종의 오도송을 읊는데, 밤의 초반에 해당하는 게송을 보면, “참으로 열심히 명상하여 법이 나타나면 신성인에게 모든 의문이 사라지나니, 원인을 갖는 법을 알아차리기에.”라고 되어 있다. 밤의 중반에도 “참으로 열심히 명상하여 법이 나타나면 신성인에게 모든 의문이 사라지..

6조 혜능의 경지

6조 혜능의 경지 6조 혜능도 예류자를 넘어선듯하다. 그의 임종게를 보면 “떨어진 잎사귀는 뿌리로 돌아가니, 돌아올 때에는 입조차 없으리라.” 보통 임종게는 자신의 경지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혜능은 자신이 입 달린 개체적인 생명체로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 존재임을 자각하고 있었다고 보인다. 그렇다며 이는 불환자를 의미한다. 또한 오조 법연은 임종시에 “너희들은 힘쓸지니라.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라고 투박하게 직설했다. 물론 이 임종게들에 대해서 다른 다양한 해석이 내려질 수는 있다. 3조 승찬대사의 의 첫머리에 “도에 이르기란 어렵지 않아서 간택만을 꺼릴 뿐이니, 사랑과 미움만 없다면 통연히 명백하니라.”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이것은 명..

두 번째 화살과 오취온

두 번째 화살과 오취온 붓다께서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가르침대로라면 첫 번째 화살은 이미 맞은 것이라 어찌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두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다는 의미겠지요. 그렇다며 첫 번째 화살과 두 번째 화살의 비유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일반적인 해석은 첫 번째 화살은 육체적 고통, 두 번째 화살은 정신적 고통입니다. 육체적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가라앉고 마침내 사라질 것이므로, 그 고통을 정신적인 고통으로 확대재생산하지 말라는 그런 얘기일 겁니다. 하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좀더 숙고해본다면 또다른 결론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화살은 오온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화살은 오취온입니다. 중생이 겪는 윤회의 수레바퀴는 한 쌍으로 두 가지입니..

오온과 오취온

오온과 오취온 오온은 나와 세상을 이루는 色受想行識으로 물질적 요소인 색과 정신적 요소인 수상행식입니다. 오취온은 이러한 오온을 나, 자아 또는 내 것이라고 여기는 무지, 착각과 집착이 덧입혀진 망상, 망념입니다. 실재가 아닌 허구적 관념이라는 것이죠. 오취온은 ‘항상하고 즐거움이며 자아가 있다’는 인지 想의 전도, 착각과 오류로 인한 과보입니다. 오온은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무아’라는 지혜가 자리한 인지 想로 인한 과보입니다. 중생인 나는 안의 오취온이며 대상은 밖의 오취온입니다. 깨달은 성자에게 오취온은 없으며 단지 오온일 따름입니다. 그런 까닭에 유전문은 오취온의 연기이며, 환멸문은 오온의 연기입니다. 유전문에서는 무명과 갈애로 인한 업의 작용이 멈추지를 않는 까닭에 생로병사의 윤회가 끝없이 반복됩..

조사선, 간화선의 한계

조사선, 간화선의 한계 중국선이 태동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 볼 때, 도가와 유교의 뿌리가 깊고 그 세력이 여전한 중국의 현실에서, 외래 종교인 불교가 명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왜곡된 인지의 전면적인 전환을 요구하기에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기는 어렵습니다. 문맹이 거의 사라지고 정보공유가 활발한 요즘에도 그러할 진대, 문자와 사유에 익숙한 이들이 드문 1500여년 전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식인 위주의 유교에 비해 도가는 민중적 요소가 강하고 불교의 가르침과 닮은 구석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외래종교인 불교가 유교와는 대립하고 노장자 철학사상과는 손을 잡고 뿌리를 내리고자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타당합니다. 선불교의 조사 가운데 나환자도 있고 일자무식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