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如如한 날들의 閑談 72

사띠 sati

사띠 sati 불교 교리와 수행에서 마음 citta과 더불어 중요한 용어를 꼽자면 사띠일 듯싶다. 5근, 5력, 7각지, 8정도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4념처수행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래서일까, 사띠는 다양한 용어와 개념으로 번역되어 오히려 큰 혼란을 야기하는 면도 적지 않다. 마음챙김, 새김, 기억, 알아차림, 상기... ‘최상의 기억과 분별을 갖추어 오래전의 일과 언어를 상기하며 사띠를 확립’한다는 경전의 표현에 힘입어 이해하자면, 사띠는 ‘지금. 여기와 관련된 내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는 행위로, 일이든 수행이든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놓치지 않고 붙잡는 작용’ ‘계속 알아차림’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다양한 면에서 사띠의 작용은 활발하지만, 특히 사념처 수행에서..

여리작의와 여실지견

여리작의와 여실지견 니까야 경전이나 초기불교 관련 해설서, 법문 등을 대하다 보면 여리작의 如理作意 yonisomanasikara, 여실지견 如實知見 yathabhutananadassana이라는 용어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여실지견은 대체로 ‘있는 그대로 알고 봄’ ‘형성되는 그대로 알고 봄’으로, 여리작의는 ‘이치에 맞는 정신활동’ ‘근원에 맞는 정신활동’ 등으로 얘기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번역은 두루뭉실할 뿐 아니라 모호하기 그지 없어서 크게 와닿지 않으며, 여리작의와 여실지견의 차이가 무엇인지 판단하기도 어렵습니다. 여리작의는 한마디로 ‘연기적 사유’를 가리킵니다. 이와 달리, ‘실체적 사유’는 소유를 동력으로 하는 감각적 쾌락에의 욕망, ‘나는 있다’라는 착각을 동력으로 하는 존재적 욕망을 바탕으..

두 가지 몸

두 가지 몸 중생계의 뭇삶은 다섯 가지 무더기, 즉 오온五蘊으로 존재합니다. 중생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이므로, 무색계를 몸이 없는 정신적 요소들만으로 구성된 존재들의 세계라는 설명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욕계는 밖의 물질을 소유적 대상으로 하는 욕망계이므로, 내 밖의 존재인 타자의 몸을 나와 동일한 하나의 인격체의 구성요소로 대하는 게 아니라 소유의 대상으로 치부합니다. 인간의 육체가 사자나 호랑이에게는 그저 먹잇감인 고깃덩어리인 것과 같은 셈이죠. 색계는 소유를 동력으로 하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여읜 한층 수승한 세계입니다. 이 몸과 정신적 요소, 즉 오온을 ‘나’라고 착각하는 세계입니다. 아직까지는 즐겁고 괴로운 육체적 느낌을 떨구지 못한 세계이지만, 선정을 성취하지 않고서는 머물지 못하는 세계입..

불교,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불교,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한국은 불교의 성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결이 사뭇 다른 대승불교와 부파불교, 초기불교가 한데 공존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불교의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기에는 더없이 좋지만, 그 흐름을 어떻게 좇아가야 하느냐는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 땅의 불자들이 대개 그렇듯, 저 역시 처음에는 대승 그중에서도 특히 선불교에 매료되었습니다. 그것이 불교의 참모습이며 전부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지금 불교에 대한 인식은 처음과는 매우 동떨어진 자리에 있습니다. 대승에서 아비담마로, 아비담마에서 초기(근본)불교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요즘은 니까야경전 위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간화선에서 시작한 수행은 니까야 의 가르침에 따라 ‘4념처’ 수행에 전념하고 있습니..

쉬운 불교, 어려운 불교

쉬운 불교, 어려운 불교 종교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철학은? 과학은? 얼추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답을 꺼내놓기에는 어려운 대상들입니다. 종교는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으니 일단 젖혀놓고, 학문적 범주인 철학과 과학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해 볼까요. 인간과 자연, 곧 주체와 객체가 전개되는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다양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대별하면 철학과 과학입니다. 철학은 정신영역인 형이상학적인 차원, 과학은 물질영역인 형이하학적인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죠. 실험과 관찰을 매개로 삶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과학이며, 정신적인 분석과 통찰 곧 사유로써 삶을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철학의 위상은 사실 고대나 현대나 크게 다를 건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 인도의 명상..

욕망의 탄생

욕망의 탄생 한 개인에게 내던져진 삶의 궁극적 목적을 거칠게 뭉뚱그려서 이해하자면, 욕망의 자기화, 실현 아닐까요? 그렇다면 대저 욕망이란 놈은 무엇인지, 욕망하는 나란 놈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욕망의 주체라고 착각하는 ‘나’ ‘자아’ ‘자기’는 아라한이 되어야 부서지는 실체론적 착각입니다. 수행을 통해서 ‘무아’를 증득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난관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 길을 떠나기 전에, 오온의 구성요소 또는 오온의 총체를 ‘나’라고 간주하는 유신견을 먼저 소멸시켜야 합니다. ‘무아’에 비하면 욕망은 그 정체를 밝히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욕망은 그 다양한 모습과, 발생과 머묾, 소멸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탐욕, 간탐, 갈구, 애착, 집착 등의 이름으..

자의식과 언어, 사유

자의식과 언어, 사유 붓다의 가르침인 3법인은 “제행무상, 제행개고, 제법무아”입니다. 열반을 제외한 모든 존재의 보편적 특징이자 성품을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존재 혹은 작용은 영원하지 않고, 불완전하고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러우며, 그러한 상태를 이렇게 저렇게 뜻대로 다룰 수 있는 고정불변의 실체인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설명입니다. 이러한 ‘無我’사상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이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지, 다른 무엇이 나를 갈음하여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다는 것인지. 붓다께서는 현실적인 ‘나’도 없고,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자아. 참나. 진아’마저도 없음을 단호하게 선언하셨지요. 무아를 철저히 깨치는 것이 붓다 가르침의 궁극적 목표라 ..

붓다의 연기법과 인공지능

일반시스템이론, 인공지능을 낳다 이 책의 주요 키워드는 일반시스템이론, 상호인과율, 그리고 불교의 연기법(緣起法) 이렇게 세 개입니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사전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알기 어려운 단어들입니다. ​ 먼저 알아두어야 할 핵심은 시스템이론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는 점입니다.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나 IBM의 왓슨, 애플의 시리, 그 밖에 거대 글로벌 IT 회사가 사활을 걸고 만들고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모두 이 시스템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 일반시스템이론은 모든 시스템이론의 기본 골격 ‘시스템(system)’이란 상호의존하는 각 구성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하나의 집합체를 이룬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론이 존재하며, 주로 컴퓨터 과학과 조직 관리에 응용되는 것으..

붓다의 가르침, 연기법

길을 가득 메운 채 사람들이 뛰어가고 있습니다. 무리의 앞과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기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고개를 돌려보니 한 사내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발갛게 달아오른 낯빛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말이죠. “왜 뛰고 있는지 궁금해서...” 나도 그 사내도, 우리 둘 주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앞을 바라본 채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대꾸합니다. “그쪽에서 뛰고 있어서 따라 뛰고 있는 겁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들, 그것들과의 관계맺음, 나를 이루는 육체와 정신, 삶의 궁극적 의미, 세계의 발생과 소멸...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현상을 꿰뚫고 이해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치, 원리, 법칙. 그것을 진리라 합니다. 진리는 세 가지..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 3법인 가운데 제법무아諸法無我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법을 유위법과 무위법으로 분류하죠. 유위법은 형성된 법(존재, 상태)로, 무위법은 형성되지 않은 법으로 규정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1,700년이라는 장구한 불교역사를 자랑하는 한국불교의 논서와 법문, 설법 어디에서도 유위법과 무위법을 정확히 규정한 곳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제법-유위법과 무위법-은 모두 형성된 법입니다. 유위법은 형성작용과 업력, 형성력을 지닌 법이며, 무위법은 업력을 지니지 않은 법입니다. 형성, 연기, 인과, 조건은 모두 동일한 맥락에서, 동일선상에서 이해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무위법이 열반인 것은 형성되었지만, 더 이상 선법이든 불선법이든 인과를 낳지 않는, 업력이 없는 상태인 까닭에서입니다. 이러한..